[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죽은 연주가가 산 예술가 쫓다

  • 입력 2005년 4월 12일 18시 09분


타인이 연주 제작한 CD를 복사 CD나 MP3 파일로 만들어 배포하면 안 된다. 공들인 연주를 훔치는 ‘해적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작사 작곡자가 죽은 지 50년이 넘었고, 음반이 제작된 지도 50년이 넘었다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음반은 타인이 복사 배포나 전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독일의 한 음반사에 대해 미국 고등법원이 ‘다른 회사의 옛 음원(音原)을 복사해 만든 음반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법원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 등이 1930, 40년대 녹음한 연주를 이 회사가 ‘저작권이 만료됐다’며 음반으로 재발매해 팔아 온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이제 문제가 일단락됐을까? 이 회사는 미국 외의 다른 나라에서 여전히 이 음반들을 팔 수 있다. 이번 미국의 판례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게 되더라도,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닥치며 긴 시간을 끌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가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3년 뒤인 2008년은 스테레오 음반이 개발된 1958년으로부터 50주년이 된다. 당시까지 모노 스피커의 한 점(點)음원에 불과했던 레코드음악은 스테레오 음향기기 출현 덕에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펼쳐지는, 입체감을 가진 소리로 재탄생했다. 이를 계기로 녹음 기술도 큰 진보를 이뤘다.

최근 CD의 음질을 개선하기 위해 탄생한 ‘슈퍼 오디오(SA) CD’ 업계가 1950년대 후반∼60년대의 초기 스테레오 음반 복원에 힘을 쏟는 데서도 그동안 얼마나 비약적인 녹음기술의 향상이 이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3년만 지나면 많은 나라에서 이 질 좋은 녹음들이 ‘음원 채집자’들의 그물 앞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음원들은 MP3 파일 등의 형태로 인터넷에서 배포되는 데도 제약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클래식이 더 큰 문제가 된다. 클래식은 대부분의 작곡가가 죽은 지 오래인 ‘죽은 작곡가의 사회’이므로, 제작된 지 50년이 된 음반만 찾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3년 뒤 실제로 이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축복일까. 음질까지 뛰어난 과거의 명연들이 무료 또는 헐값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음악 팬의 금전적 부담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반면 ‘현역’ 예술가들이 새로 음반을 만들어 돈을 벌 확률은 훨씬 줄어 음반 제작자들은 새로운 레코딩에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작곡가 사회에 이어 ‘죽은 연주가 사회’도 도래하게 되는 셈이다. 마냥 반가워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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