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거환경의 색은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으로 단번에 바뀌었다. 관 주도의 사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까닭으로 새마을운동 당시 초가 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나 기와를 얹은 뒤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원색 페인트를 칠하곤 했다.
문제는 이런 개방 중심의 획일주의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눈에 쉽게 띄는 원색은 시각 공해를 유발한다. 특히 극단적인 색채 활용은 그곳에 사는 이들의 성격을 자극적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다. 색채 자극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조급해지고, 과도한 경쟁 심리에 휘말려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환경의 색은 해당 지역의 풍토와 어울려야 한다. 본래 건축의 재료는 자연물이다. 그러므로 지역별로 고유한 생활 문화를 반영하기 위한 주거지의 색은 흙과 돌이 기본을 이뤄야 한다.
따라서 우리 농어촌 지역의 주택은 무채색과 갈색을 주로 활용해 풍광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널리 존재하는 무기물의 색인 무채색 계열은 아늑한 이미지를 줄 뿐 아니라 원색을 조금만 섞더라도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풍토색에 근거해 색을 칠하면 무엇보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서 함양에 효과가 있다.
특히 땅의 색과 주택의 색은 유사할수록 좋다. 바다 인접 지역에는 밝고 명쾌한 색을, 내륙에는 차분한 무채색을 적용하는 것이 빛과 생태를 고려한 원칙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이 같은 주택의 색채 표준을 마련하고 그 적용과 관리를 체계화했으면 한다.
자연 환경과 심성에 부합하는 색은 육체와 정신의 피로를 줄이고 해당 지역의 품위도 살릴 수 있다. 마을 분위기를 차분하고 안정감있게 하기 위해서는 색채로 통일감을 주어야 한다. 이는 주민의 연대의식을 높이는 것은 물론 미관의 아름다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
농어촌의 지붕 색은 ‘선진 국가’의 시각적 품격을 드러내는 지표다. 눈에 잘 띈다고 해서 결코 좋은 배색이 아니다.
성기혁 경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khsung@kyungb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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