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시 반(한국 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을 떠난 아시아나항공(OZ) 734편. 5년 8개월 만에 귀국길에 오른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은 오전 2시 반경 승무원이 권하는 기내식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이륙 10분 전 현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승객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를 ‘국빈급’으로 대우한 베트남 정부의 배려에 따른 것이다.
그는 법률대리인인 김&장의 조준형(趙俊炯) 변호사, 주치의인 아주대 의대 소의영(蘇義永) 교수 등 일행 4명의 부축을 받으며 트랩에 올랐다. 감색 양복에 연자주색 넥타이를 맨 그는 여러 차례의 장협착증 수술 때문인지 얼굴은 초췌했고 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김 전 회장을 촬영하기 위해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기내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는 비즈니스석 첫째 줄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으며 흰 수염이 까칠하게 돋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항공사 측에서 배치한 4명의 남자 승무원이 김 전 회장을 둘러싸고 카메라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항공사 측은 일반석과 비즈니스석을 잇는 두 곳의 통로를 통제했다.
이륙 후 2시간이 지난 오전 3시 반경 김 전 회장은 변호사를 통해 기자들을 만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건강 상태를 묻자 그는 “아주 좋지 않다. 5년 동안 계속 병이 악화된 것 같다. 의사와 같이 가는데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라고 답했다.
귀국 동기에 대해 그는 “몸이 아팠고 (대우사태에 관해) 내가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이라며 “몸이 안 좋으니 그만하자. 자세한 것은 귀국해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5분 정도 진행된 ‘간이 인터뷰’에서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5차례나 반복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좌석등(燈)을 끄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책이나 신문을 읽지도 않고 TV나 영화도 보지 않았다. 간간이 옆자리에 앉은 조 변호사와 짧게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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