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댓클래식]BBC의 신선한 실험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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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국 BBC 라디오 3 채널 인터넷 사이트(www.bbc.co.uk/radio3)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잔안드레아 노세다가 지휘하는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방송사 측은 이 연주를 MP3 파일로 만들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제공한다.

5∼10일 먼저 교향곡 1번부터 5번까지의 파일이 제공되었고, 28일부터 7월 7일까지는 교향곡 6∼9번의 파일을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BBC 측은 이달 초순 5개 교향곡의 파일 공개 기간 동안 70만 명에 이르는 누리꾼(네티즌)이 파일을 내려받았다고 밝혔다.

5개 교향곡의 연주를 CD로 만들어 한 장에 교향곡 한 장을 싣고 1만 원씩만 받는다고 계산해도 350억 원이다. 방송사와 교향악단이 자선가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이런 커다란 선물을 음악 팬들에게 안겨 주는 것일까.

물론 이런 계산은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받고 CD를 판매한다면 70만 명씩이나 전집을 살 리가 없다. 어차피 악단 측은 모든 공연을 녹음하게 되어 있고, 이를 MP3 파일로 만들어 공개하는 것은 생산비와 물류비가 들어가는 CD 제작과 달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방송사로서는 홈페이지의 접속 건수를 늘리고 교향악단은 자신들의 연주를 널리 알려 화제가 될 수 있다. 영국 5대 악단 중 하나로 꼽히는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면 연주의 질에도 자신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홈페이지의 의견란에는 ‘신선한 시도일 뿐 아니라 연주 자체도 진지하고 신선한 명연주다’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 실험은 앞으로 클래식 분야의 악단들이 청중과 만나는 새로운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음반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악단은 본디 극히 일부분이다.

그나마 1980, 90년대 붐을 이룬 녹음 라이브러리의 포화와 최근 극성을 이루는 CD 불법복제의 범람으로 한계에 부닥치게 됐다. 녹음을 통해 ‘복제된’ 연주(음반)가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음악 파일을 공짜로 제공해 팬 층을 늘리고 지자체나 민간기업의 후원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최근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 꼭 들어둘 만한 명연이었다는 평을 여러 군데서 접했다. 다른 볼일 때문에 공연을 보지 못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이 악단 홈페이지에서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기술(IT)의 실험장이라는 한국에서 먼저 시도할 수도 있는 일 아닐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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