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78>미국의 민주주의-알렉시스 드 토크빌

  • 입력 2005년 7월 4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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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은 예리한 관찰자요 심오한 예언자다. 미국을 불과 7개월 여행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장점과 한계를 면밀히 파헤쳤으며, 장래 미국과 러시아가 두 세계 강국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미국 사회가 프랑스 사회보다 민주적인 이유를 토크빌은 미국의 활성화된 지방자치, 자발적인 결사체, 배심원제도 등에서 찾았다. 이것들이 국가권력의 집중과 전제화 경향을 억제하고 다수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며 시민들의 공공의식을 함양시켜 준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관습도 중요하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 다양한 헌정질서와 정치제도를 고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달리 민주주의를 성취하지 못한 이유는 두 나라 사이의 상이한 관습에 있다.

흥미롭게도 토크빌은 당시의 급진자유주의자들 및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자유와 평등을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았다.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지만 자유보다는 평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평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유를 물질적 복지를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호하기 때문에 자유가 번영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물질적 복지와 조건의 평등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것이라는 견해다. 특히 자유는 획득하기도 어렵고 그 이점도 잘 보이지 않는 반면 평등은 그 이점이 매우 즉각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등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평등화의 경향으로부터 오는 민주적 전제주의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개인주의로부터 오는 민주적 전제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서로 고립되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던 전통적인 유대는 거의 모두 해체된다. 게다가 조건의 평등과 물질적 복지에 대한 애착으로 중앙정부의 기능은 강화되고, 이로 인해 국가와 개인 사이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던 교회, 가족, 길드, 지역공동체 등 거의 모든 중간집단은 약화된다.

대중의 여론도 전제주의를 부추긴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게 됨에 따라 개인들의 다양한 의견보다는 다수가 형성한 여론이 오히려 더 강한 지적·도덕적 권위를 행사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개인들은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고 거기에 안주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한다. 정치적 무관심 또한 문제다. 정치가 시민들의 관심으로부터 떨어져나갈 때 사적인 이해관계가 공적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병폐라 할 로비문화와 정경유착이 나타나는 맥락이다.

파리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행정경험을 쌓은 토크빌의 사상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넘나들 정도로 독특하고 뛰어나서 당대의 정치사상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 민주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그가 우려했던 대로 자유의 자발적 포기, 평등에 대한 열망, 다수의 횡포, 그리고 로비문화와 정경유착 등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여러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선후진국들이 겪고 있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 또한 풀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

임현진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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