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19 쇼크]<9>돈 주면 낳을까?

  • 입력 2005년 7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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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첫 아이를 출산한 정모(29·전남 담양군 금성면) 씨는 군청으로부터 30만 원의 출산지원금을 받았다.

그는 “지원금이 출산용품 구입에 약간 보탬은 됐지만 그뿐”이라며 “그보다는 아이를 키울 때 양육비를 보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출산 위기가 심각해지자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출산지원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현금을 주는 것이 출산율 회복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한마디로 효과가 뚜렷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 어려운 ‘계륵(鷄肋)’이다. 대다수 국가가 출산지원금 양육보조금 등과 같은 개별적 현금 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의 복지와 양육의 사회화를 위한 이러한 정책이 출산율을 끌어올렸다는 직접적 증거는 거의 없다.

○“이거 받고 제발…” vs “양에 안 차요”

출산율 회복을 위해 2년 전부터 양육지원금제도를 실시 중인 스페인에서도 현금 지원의 효과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스페인은 3세 미만의 자녀를 둔 모든 가정에 자녀 1인당 연간 1200유로(약 150만 원)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또 취업 여성은 추가로 매달 100유로(약 12만5000원)의 현금 지원을 받거나 연간 1200유로의 세금을 추가로 감면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인공수정으로 세 쌍둥이를 낳고 이듬해 한 명을 더 낳아 모두 아들 4명을 둔 엘레나 몬테스(43) 씨는 양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하루에 기저귀만 48개를 쓰는 그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양육비는 한 달에 1200유로. 그는 “이전에 한 달에 400유로씩 현금으로 받던 양육지원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반면 두 살짜리 아들 하나를 둔 아나 아르타사 히메네스(36) 씨는 “한 달에 350유로를 내는 민간보육원 비용 때문에 지원금이 약간 도움은 되지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했다. 스페인 노동사회부 가족국장 암파로 마르살 마르티네스 씨는 “양육지원금 제도를 도입하기까지 무척 힘이 들었는데 이 제도가 출산율 상승에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한국의 경우 6세 이하 추가 공제, 영유아 교육비 공제한도 확대 등 자녀 양육 관련 세제 지원이 지난해 1인당 240만 원에서 520만 원으로 늘어났으나 현금 지원 제도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출산지원금, 양육보조금이 전부다.

6월 현재 전국 24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출산지원금 제도를 도입한 곳은 모두 105곳. 각 지자체의 출산지원금은 지역인구를 늘리기 위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강하다. 지역마다 지원 여부, 금액이 모두 다르다 보니 보건복지부 종합민원실,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에는 ‘왜 우리 동네는 출산지원금을 주지 않느냐’ ‘왜 이웃 동네보다 적게 주느냐’는 항의가 곧잘 들어온다.

미국 유타주립대 김연(金鍊·인구학) 명예교수는 “출산 이후 지원되는 인센티브는 기본적으로 아동복지 정책이며 출산율 회복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면서 “액수도 적고 지자체마다 전부 다르게 적용되며 일회성 출산지원금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복지차원 필요” vs “도덕적 해이”

출산, 양육과 관련한 현금 지원과 세제 혜택이 가장 많은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수아 에랑 국립 인구문제연구소장은 “재정 지원 정책으로 여성 1명당 0.1∼0.2명의 자녀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적은 수지만 40∼60년 이후를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이며 장기적으로 출산을 꺼리는 요인을 제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조영태(曺永台·인구학)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현금으로 지원되는 아동수당이 저출산 해결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도 사회복지 확대 차원에서 실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장지연(張芝延)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금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출산과 관계가 없으며 국가의 양육수당 지급은 여성의 경제활동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육지원금이 풍성한 미국, 프랑스에서는 현금 지원 정책이 일하지 않고 양육지원금만으로 생활하는 게으른 부모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강력한 고용’을 전제로 한 스웨덴의 현금 지원 정책을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은 부모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양육지원금만 받아 생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득을 바탕으로 ‘부모 보험’을 지급한다.

스웨덴에서 만난 ‘대학생 엄마’ 마르가리타 오스트롬(25) 씨는 “부모 보험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기 전 학교를 다니면서 일부러 일을 했다”며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노는 사람들에게까지 사회가 세금을 분배해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보육료 자율화, 경쟁력 높일까 부담만 커질까▼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고 있는 스웨덴과 프랑스는 저출산 극복에 성공했다.

호주는 보육료 자율화 이후 10년 사이에 보육료가 4배 이상 올랐다. 하지만 호주는 아직 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재정경제부 등 일부 부처는 보육서비스에 시장원리를 도입해 질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입장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보육의 공공성을 외면한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의 보육예산은 지방비를 포함해 올해 1조3000억 원. 보육시설 운영비와 보육료 지원에 들어가는 돈이다.

국공립 보육시설 아동은 전체아동 중 11% 정도. 국공립 보육시설에 들어가려면 2, 3년은 기다려야 한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도 공보육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여성가족부 최성지(崔聖知) 보육기획과장은 “보육료 자율화는 공보육이 기반을 갖춘 다음에야 언급될 만한 문제”라며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그러나 예산 확보도 어렵고 보육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라는 다른 부처의 압력도 솔직히 힘겹다”고 토로했다.

이윤경(李允璥) 전국보육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보육은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라며 “호주를 비롯해 보육을 시장원리로 다뤘을 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안전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적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았고 부모가 양육비 부담을 과중하게 느끼고 있는 실정에서 각자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품질 차이가 있는 보육서비스를 구매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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