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는 여러 모로 신선한 ‘첫 경험’이다. 세습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제1야당 당수를 하고 있다. 벌써 취임 1주년, 평판도 나쁘지 않다. 흘러간 시대의 여걸들, 이를 테면 박순천 김정례 김옥선 씨들과는 또 다르다. 웅변가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며 낮은 목소리로 당을 이끌고 있다.
물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그의 저서 제목이다) 안 되는 일이다. 경제를 일으킨 대통령의 딸이라는 후광이 크다. 부모를 불행한 일로 잃은 데 대한 동정도 있다. 한나라를 탈당해 시린 벌판에서 홀로 미래연합을 이끌던 쓰라린 경험도 이제는 힘일 것이다.
그는 한국 정치의 실험이고, 한나라당의 실험이기도 하다. 얼마나 여물어서 어디까지 가느냐가 숫제 기록이요 관심거리다. 그 자신도 실험적인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묵은 형태의 계보를 거느리지 않는다. 돈, 폭탄주나 모임으로 당권을 거머쥐는 계보정치가 아니다. 측근은 있어도 김영삼, 이회창 시대 같은 측근정치와는 다르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미혼 여당수의 취향 때문인지 단정키 어렵다. 분명한 것은 원내대표 등 당3역을 포함해 평의원에 이르기까지 당내 어디에도 ‘영원한 박근혜 사람’이 없는 이상한(?) 당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내에서는 이런 첫 경험이 신선하다고도 하고, 불안하다고도 한다.
그는 대권후보가 되면 더 좋고, 안 되더라도 당권은 거머쥐게 돼 있다. 이건 지난 시절 3 김씨 빼놓고는 꿈도 못 꾸던 자산이다. 박근혜 간판을 거는 한 ‘영남 불패(不敗)’는 계속될 것이다. 심지어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까지 박근혜 강풍이 불어 닥쳐 여당의 L 의원은 “선거일이 하루 이틀 뒤였으면 영락없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이런 파워는 3년 뒤 대선 총선 때까지는 유효하다. ‘공천=당선’인 영남에서의 박근혜는 포지션에 관계없이 살아있는 권력이다. 계보를 거느릴 필요가 없는, 밑천 안 드는 지역 맹주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대적 사명이랄까,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은 그만큼 더 무겁고 커진다.
‘계보 없는 맹주’는 깜깜한 밤중에 ‘0시(零時)의 횃불’(박정희 평전의 제목)을 치켜든 아버지가 시켜 준 것이다. 아버지는 현실 안주(安住)를 뿌리치고 ‘부패정치 일소’(5·16공약)를 위해 쿠데타로 권력을 쥐었고,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외치며 자기 길을 갔다. 순응과 타협을 뿌리치고 도전하며 전투하는 자세로 살다 갔다.
딸이 내거는 한나라당의 극복과제는 공교롭다. ‘현실안주정당’ ‘부패정당’ ‘지역당’ ‘반(反)통일정당’ 이미지를 떨치는 것이다. 아버지의 쿠데타 동기가 오늘날 딸의 과제로 남아 있다. 소속 의원 다수는 영남당에 만족하고 웰빙으로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 “차떼기당이면 어떠냐, 당수 치마폭 붙잡고 당선되면 좋은 거 아니냐”는 식이다.
당 대표인 그 자신도 인재풀을 한정해 놓고 신뢰하는 사람만 쓴다. 대변인이 말실수를 해도 달리 대안이 없다고 붙잡고, 여의도연구소장에는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선거법 위반)의 주인공을 고집스럽게 기용한다. 디지털정당 간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인사요, 공주(公主)식 코드인사다.
박근혜식의 혁명과 창조가 바로 아버지의 딸다움이요, 국민에 대한 보은(報恩)이다. 박 대표는 또 다른 저서의 제목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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