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이 21일 위안화 가치를 2% 절상하고 달러 고정환율제를 폐지한다고 전격 발표했을까” 하는 의문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겠다는 속셈이려니…. 미국은 중국에 대해 위안화 가치를 올리고 고정환율제를 없애도록 줄기차게 압력을 넣었다.
9월에 방미 예정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리 손을 써 미국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작전인 듯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크로퍼드 목장에 초대를 받아 부드러운 회담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심산 아니겠는가.
부시 대통령의 경제수석보좌관이었던 로런스 린지 씨는 “고정환율제는 중세 때의 중상주의 같은 것이어서 국민 복지보다 국부(國富)에만 치중하는 제도”라면서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고수하면 글로벌 경제 체제의 회원이 될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한 적이 있다.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흑자는 재작년 1300억 달러, 작년 1600억 달러란 거액이었다. 싸구려 상품을 무차별 수출해 달러뭉치를 큼직한 바구니에 쓸어 담다시피 해 번 돈이다. 월마트, 타깃 등 미국의 대형할인점에서 중국산 상품이 미국산을 몰아내고 있음을 이 수치가 보여 준다. 미국 근로자들은 중국 때문에 지난 몇 년간 300만 개 가까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위안화 가치를 올려 중국의 수출경쟁력을 낮추지 않으면 미국 공장들은 줄줄이 문을 닫을 판이라고 하소연한다.
미-중 사이에 ‘브래지어 전쟁’이라는 게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상무부가 2003년 11월 중국산 브래지어에 대해 수입량을 할당하겠다고 발표하자 중국 업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에 미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양국의 실랑이를 이같이 이름 붙인 바 있다.
중국은 거침없이 늘어나는 수출 덕분에 6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으로 7110억 달러를 쌓아놓았다. 이 돈으로 유노칼 같은 거대 에너지 기업을 인수하려 시도해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러 전문가는 중국이 앞으로 위안화를 5∼10% 더 절상할 것이라 전망한다. 곳간에 달러가 넘치니 위안화를 절상해 달러벌이 규모를 줄여도 괜찮을 만큼 여유가 생긴 셈이다. 중국의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9.5%, 과열을 염려해 열 식히기에 들어갈 정도다. 한국의 3.0%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냈다.
중국에 비해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떤가. 실사구시(實事求是)보다는 허장성세(虛張聲勢)형 아닌가.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과 맞설 국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도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 “할 말은 하겠다”는 등 뒷감당 못할 발언을 남발하는 편 아닌가. 물론 주권국가의 지도자로서 대외적으로 의연함을 꺾으라는 지적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당당한 자세 단계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돈키호테식 만용은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중국의 성장속도를 보면 언젠가 미국 경제력을 능가하리라는 예견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그런 중국도 때로는 울분을 속으로 삼키며 내실을 다진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보기에만 그럴듯한 쓸모없는 명분주의, 순수한 듯하지만 비현실적인 교조적 원리주의, 서민의 삶을 결과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인기 영합주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중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교묘한 상징 조작 등에서 언제쯤에야 초탈할까.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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