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2: 카트만두 동쪽 해발 1800m의 위성도시 차프레단다. 산기슭 곳곳의 벽돌공장에선 5∼10세의 벌거숭이 아이들이 갓 구워낸 벽돌들을 야적장으로 옮기고 있다. 일당은 평균 30루피(약 430원). 산간벽지에서 팔려 온 아이들이다. 해가 저물면 벽돌로 쌓아 올린 개집 크기의 잠자리로 돌아온다. 바닥은 오래된 신문지.
#장면 3: 카트만두 번화가 타멜의 공영 주차장. 20대 중반의 자가 운전 청년이 불법 주차를 단속하던 40대의 관리원을 마구 걷어찬다. 주차요금 지불 거부에 옆 승용차에 손상까지 입혔는데 청년은 당당하다. 그는 이 나라 최상급 계급인 브라만 출신이다.
기자가 최근 직접 목격한 네팔의 현주소다. 장면 1은 1990년대 중반부터 왕정을 전복시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반군의 급속한 세력 확장을, 장면 2는 엄마 젖을 물고 있어야 할 나이의 아이가 공장으로 내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40달러 세계 최빈국의 참혹상을, 장면 3은 103개 계급으로 이뤄진 신분제도의 폐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네팔에서 미래를 찾아요? 히말라야의 눈이 녹기 전까지는 가능하지 않다고 얼마 전까지 생각했습니다.” 네팔 최대 영자지 카트만두포스트의 아미트 다칼 편집국장의 고백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네팔에 변화가 일고 있다. 라메시 나트 판데이 네팔 외무장관은 지난주 베이징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을 만나 중국과 인도를 잇는 21세기 실크로드 완결판인 네팔의 가교론, 이른바 ‘네팔 트랜싯 이코노미(Nepal Transit Economy)’ 구상을 제안해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갸넨드라 국왕 역시 인도 정부 관리들에게 같은 구상을 전달해 동의를 얻어냈다.
당초 아시아개발은행(ADB) 네팔담당관인 나성섭(47) 박사가 입안한 이 구상은 인구 23억에 연간 6∼10%의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인도(CHINDIA) 경제권을 배후 기지로 삼아 네팔의 경제개발을 꾀하자는 것이다. 연간 교역 규모 200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과 인도 사이의 네팔 내 히말라야 산맥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뚫으면 물류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네팔정부는 비교적 지형이 덜 험한 7개 국경지역을 고속도로 후보지로 제시하고 있다.
네팔도 앉아서 받아먹지만은 않겠다는 자세다. 세계 2위의 풍부한 수자원을 활용, 히말라야 산맥 곳곳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인도북부의 공업지대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장관급인 네팔국가계획위원회(NPC) 참팍 포크하렐 상임위원은 “해발 0에서 8000m에 이르는 산악지대를 이용, 고도에 따라 화훼 낙농 바이오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중점을 두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네팔 정부는 전통 관념에 젖어 있는 국민들의 의식 개혁을 위해 한국의 새마을운동 모델을 도입하기로 하고 최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도움을 받아 시범 지역에서의 농촌 현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카트만두=반병희 기자 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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