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영과 함께 어렵게 하수(河水)를 건널 때만 해도 한왕 유방은 대장군 한신이 수무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수무의 전사(傳舍)에 들어 알아보니 한신은 그곳에 없었다. 한신은 장이와 더불어 그곳에서 동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소수무(小修武)란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한신이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아온 하후영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나 한왕은 별 내색 없이 말하였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말을 쉬게 한 뒤 소수무로 가자.”
“그러면 소수무에 이르기 전에 날이 저물게 됩니다. 성문이 굳게 닫혀 있을 터인데, 과연 성안에서 대왕을 알아보고 쉽게 성문을 열어줄까요?”
“성 밖 전사에서 자고 아침 일찍 성안으로 들어간다. 날이 밝으면 성문을 열게 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고 마침 날라져 온 음식을 태평스레 먹고 마셨다. 하후영은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나 한왕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날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낮잠까지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난 뒤에야 소수무로 수레를 몰아갔다.
해가 제법 뉘엿해진 데다 말들도 서너 식경(食頃)이나 쉬어서 그런지 잘 달려주어 밤이 깊기 전에 한왕과 하후영은 소수무에 이를 수 있었다. 성안에 대장군 한신이 조나라에서 거둔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 다시 하후영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한왕은 여전히 태평스럽기만 했다.
“여기서 자고 날이 밝으면 성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도 말도 푹 쉬게 하여라.”
전사에 짐을 풀게 한 뒤 그렇게 말하고는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시켰다. 그리고는 걱정에 싸인 하후영을 불러 앉혀 밤늦도록 먹고 마시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이었다. 겨우 전사의 창문이 희끄무레 밝아 오는데 한왕이 하후영을 불러 깨웠다. 하후영이 천근으로 내려앉는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한왕이 조용히 말했다.
“등공은 옷차림을 바로 하고, 어서 수레에 말을 메우라.”
하후영이 보니 한왕도 마음 써서 복색을 갖춰 입고 있었다. 위엄과 격식은 있어도 왕이나 장군의 차림은 아니었다. 그런 한왕이 꾀하는 바를 다 알 수는 없어도 무언가 뚜렷한 계책에 따라 한왕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하후영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사태의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그 핵심을 단숨에 잡아채는 능력 또는 한왕을 따르는 이상한 행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후영이 수레를 끌고 오자 한왕은 곧바로 수레를 성문 앞으로 몰아가게 했다. 날이 밝았다 해도 늦여름이라 그런지, 문루(門樓)에는 파수 보는 군사 몇밖에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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