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1>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대왕. 이 새벽에 여기는 어인 일이십니까?”

한왕의 얼굴을 알아본 그 장수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고가 위급해 빠져나온 길이다. 어쩌면 지금쯤은 성고가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왕이 그렇게 대답한 뒤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신과 장이는 어디 있느냐?”

“옆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한신의 사인(舍人)이자 호위인 셈인 장수가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이 다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물었다.

“과인이 내린 대장군의 인부(印符)와 부월(斧鉞)은 어디 있느냐?”

“저기 저 상자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 장수가 여전히 아무런 의심 없이 객청 한쪽을 가리키며 그렇게 아는 대로 일러 주었다. 그러자 한왕은 그 상자를 가져오게 해 먼저 대장군의 인부부터 거두었다.

한왕이 그렇게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두는 동안에도 한신과 장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아침잠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철저하게 한왕이 한신 주변의 장졸들을 장악했다는 뜻이었다. 한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매섭고도 세찬 기운이 그들을 억눌러, 한왕의 명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한신과 장이를 깨울 수 없게 했다.

그 사이 하후영이 군사들을 풀어 불러들인 장수들이 하나 둘 객청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달려 온 것은 성격이 불같고 몸놀림이 재빠른 관영(灌영)이었다. 지난번에 간신히 형양성을 탈출한 한왕을 낙양까지 호위하고 갔던 관영은 한왕이 미처 안전하게 관중으로 드는 걸 보지 못하고 한신에게 배속되었다. 그 바람에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던 까닭인지 관영은 한왕을 보자 그답지 않게 눈물까지 글썽였다.

“비록 엄명을 받고 조나라로 왔으나 대왕을 어려움 가운데 버려두고 떠난 터라 항시 걱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대왕을 호위하려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는 관영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든 것은 조참(曺參)이었다.

“형양이 떨어지고 성고가 위태롭단 말에 대왕의 안위를 걱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꿈인가 싶습니다.”

오다가 하후영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인지 조참의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한왕은 평소처럼 태평스럽기가 산악 같았다. 대수롭지 않은 듯 성고에서 있었던 일을 되뇌고는 뒤이어 달려온 주발(周勃)을 맞았다. 주발 역시 한왕이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하다가 한왕이 그곳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끝내 오창(敖倉)을 지키지 못하고 조나라로 달아난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대장군이 정히 군사를 움직이지 않으면 저만이라도 성고로 달려갈 작정이었습니다.”

이어 여러 장수가 줄을 이었다. 눈치 빠른 하후영이 짠 일인지, 오래전부터 한왕을 따르다가 한신에게 배속된 장수들이 먼저 오고, 한신이 새로 얻거나 항복한 조나라 출신 장수들은 한발 늦게 객청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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