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의 본래 뜻인 ‘비우다’라는 말에 걸맞게 여름이면 파리가 텅텅 빌 정도였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따른 경제난으로 한 달씩 여름휴가를 즐기던 관습이 사라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9일 프랑스 당국의 통계를 들어 “4년 전 도입된 35시간 근로제 덕분에 연중 휴가 일수가 평균 11주로 늘어났지만 여름휴가는 오히려 2주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호텔레스토랑연합에 따르면 올해 여름 매출은 15∼2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시민들의 씀씀이도 줄어들었다. 여론조사 기관인 입소스(Ipsos)에 따르면 휴가를 가는 두 명 중 한 명은 지방의 친구나 가족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중 휴가비로는 1500유로(약 190만 원) 이하를 쓴다는 응답자가 52%에 이르렀다.
레스토랑 주인들은 휴가객의 달라진 씀씀이를 몸으로 느낀다고 토로한다. 와인보다는 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며 저녁에도 코스 요리를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1년 매출의 대부분을 7, 8월에 올리는 남부 지중해 연안 업소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하다. 니스의 한 호텔 직원은 “주민이나 여행객 모두 레스토랑처럼 생긴 곳은 무조건 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름휴가 축소 경향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 시민들에게는 반가운 현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름이면 상점들이 문을 닫아 바게트빵 하나를 사기 위해 이리저리 거리를 헤매야 했기 때문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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