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3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31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장군과 상산왕은 어찌 이리 늦으셨소?”

별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한왕의 목소리였으나 한신과 장이는 왠지 꾸짖는 듯 들렸다.

한신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부르심을 받지 못해… 진작 대왕을 받들어 모시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등공이 중군막(中軍幕)에 주무시는 두 분을 깜박 잊은 모양이오. 어쨌든 잘 오셨소. 두 분에게도 서둘러 해야 할 새 일을 주겠소.”

한왕이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돌연 말투를 바꾸었다.

“이제부터 대장군 한신을 우리 한나라의 상국(相國)으로 삼는다. 한 상국은 조나라의 장정 가운데 아직도 군사로 뽑히지 않은 자를 모두 거두어 이끌고 제나라로 가라. 새로 우승상이 된 조참과 기장(騎將) 관영을 딸려줄 터이니, 반드시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사로잡아 과인의 뜻을 받들게 해야 한다. 전 상산왕 장이는 조왕(趙王)의 일을 우선 맡아[가임] 조나라를 지키도록 하라. 이미 지난봄에 대장군의 청이 있어 장이를 조왕으로 삼기를 허락한 바 있으나, 인수(印綬)와 부절(符節)을 갖출 겨를이 없었다. 머지않아 격식을 갖춘 즉위(卽位)가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 제 땅을 잘 지켜내야 한다.”

한신과 장이는 모두 실속 없는 관작은 올랐지만, 거느리고 있던 군사는 한왕에게 깨끗이 빼앗기고 만 셈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로 한왕이 인심 쓰듯 떼어준 군사 몇 천을 거느리고 한단(邯鄲)으로 돌아가 새로 군사를 모으고 전곡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한신과 장이가 여러 달 조나라에 머물면서 기른 5만 대군을 빼앗아 거느리게 되자 한왕은 다시 성고 쪽을 돌아보게 되었다. 곁에 남은 주발과 하후영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성고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자방과 진평은 성을 버리고 빠져나갈 것이라 했으나 그게 어찌 쉽겠는가? 급히 군사를 몰아 성고를 구하러 감이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을 에워싼 패왕 항우의 무서운 기세를 겪어본 두 사람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하후영은 어제그제 겨우 빠져나온 범아가리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구하러 가려 해도 구해야 할 성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사람을 풀어 성고의 형편을 알아보고 군사를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한왕도 그 말이 옳게 들렸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성고 쪽에서 제 발로 사람이 찾아왔다. 어렵게 초나라 군사들의 에움을 뚫고 성고성을 빠져나온 한나라 장수들이 그들이었다.

“정말로 너희들이 성을 빠져나와 과인을 찾아왔구나. 그래, 성고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을 알아본 한왕이 객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에게로 달려가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손을 잡힌 장수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지금쯤은 성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제 밤 저희들이 빠져 나올 때만 해도 이미 성안에는 남아 있는 장졸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역상과 근흡 장군이 몇 백 안 되는 군사로 백성들을 몰아 항왕의 눈을 속이고 있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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