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나라는 한왕을 받들고 항우와 싸우기로 하였다. 이제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사는 이리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백성들은 모두 성벽 위에서 내려 보내고 군사들도 번갈아 파수나 서도록 하라.”
하지만 한신이 오지 않는다면 더는 북쪽에서 하수를 건너 내려올 적이 없었다. 이에 성안 장졸들은 그날로 모든 싸움이 끝난 것처럼 오랜 긴장을 벗어던지고 흥청거리며 쉬었다. 특히 한군이 하수를 건넌 그날은 성안의 제나라 군사들 거의 모두가 파수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고 깊은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한군이 갑작스러운 함성과 함께 성을 에워싸자 성안의 제나라 군사들은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놀란 눈을 비비며 성벽 위로 올라와 살펴보니 그사이 사방이 온통 한군의 붉은 깃발로 뒤덮여 있었다.
“성을 지키는 장수가 누구냐? 평원성의 수장은 어서 문루로 나와 내 말을 들어라!”
성문 앞 공터에 말을 세운 장수가 큰소리로 그같이 외쳤다. 키가 크고 얼굴이 허여멀쑥한 것이 이름 없는 장수 같지 않았다. 그제야 겨우 갑옷 투구를 꿰고 온 평원성의 수장이 문루로 나가 기죽지 않으려고 애쓰며 큰소리로 맞받았다.
“내가 평원성을 지키는 전욱(田昱)이다. 적장은 누구며 왜 나를 찾느냐?”
“나는 한나라의 대장군이요, 조나라의 상국 한신이다. 한왕의 명을 받들어 너희 제나라를 거두려고 왔다.”
한신의 그와 같은 말에 전욱이 어리둥절해 받았다.
“듣기로 우리 제나라는 한나라에 항복하고, 우리 대왕은 한왕 밑에 들어가 함께 서초패왕 항우에게 맞서기로 하였다고 했소. 그런데 새삼 군사를 내어 우리 성을 에워싼 까닭이 무엇이오?”
“제왕(齊王)이 한나라에 항복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무엇이 더 궁금하단 말이냐? 어서 성문을 열어 우리를 맞고 너희는 우리를 따라 항우와 싸우러 남쪽으로 내려가자.”
한신이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소리쳤다. 그제야 전욱도 짚이는 게 있는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알아볼 게 더 있어 터지려는 분통을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
“우리 대왕께서 한왕께 항복하신 까닭은 제나라의 땅과 백성을 보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오. 그런데 이제 한군이 와서 우리 성을 차지하고 우리 군사들을 끌고 간다면 항우가 와서 제나라를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정녕 한왕께서 이 일을 알고나 계신 것이오?”
글 이문열
“하늘에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제왕이 이미 우리 한왕께 항복했다면 그것은 바로 신하가 되어 우리 한왕을 받들겠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너희 임금의 뜻이 그러하거늘 너희가 어찌 한왕의 명에 맞서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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