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주덕]‘검사의 편지’ 보통사람도 받을수 있을까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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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월드컵휘장사업 관련 뇌물사건을 수사할 때였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의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약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소환조사를 했다. 이들이 끝내 혐의를 부인하자 6명을 구속기소하며 압박했다. 하지만 물증 확보에 실패해 법원에서 이들 모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났다.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정치자금이나 뇌물 공여 사실을 자백 받으려면 일단 회사의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잡아 구속하겠다고 겁을 주곤 한다. 참고인에게도 다른 약점을 건드리는 방법으로 수사협조를 강요하는 일이 잦다.

수사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물의를 일으킨 사례들은 검찰의 ‘아픈 과거’다. 심지어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으로 검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행담도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가 수사에 협조해 준 참고인 110여 명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조사를 받았던 참고인들에게 “빠른 시간 내에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 보겠다는 의욕이 앞서 불손한 말투나 친절하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혹시 잘못이 있었다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는 편지를 보냈다.

수사가 끝난 다음 검사가 사건 관계자에게 감사와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16년간 검사 생활을 한 필자도 혹 무리한 수사나 인권 무시 사례가 없었는지 두렵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짚을 것이 있다. 편지를 받은 행담도 사건의 관련자들은 대개 권력층 및 그 주변 인물이었다. 검찰이 ‘권력 주변’이 아니라 ‘보통사람 참고인’에게도 이런 편지를 보낸 일이 있는가. 평범한 인물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수사했더라도 이번처럼 사과와 양해의 편지를 보냈을까. 이 같은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면 검찰의 반성과 변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또 만일 ‘편지’가 행담도 사건 참고인에 국한되고 만다면 이는 오히려 검찰에 또 하나의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다.

오랜 기간 검찰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망설여지는 얘기를 꺼냈다.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만 덧붙이자. 사실 수사에서의 적법절차 준수와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장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이념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수사관행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참여정부 이후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권위주의적 태도를 불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검찰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직무의식과 봉사정신을 요구하고 있다. 검찰과 국민 간의 괴리가 아직 크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첫째, 국민은 검찰이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젊은 검사가 피의자를 일단 죄인 취급하거나 반말을 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국민은 큰 거부감을 보여 왔다.

둘째, 기업인 등 사건관계인들을 소환해서 ‘불래, 망할래’라고 협박하며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방식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검찰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대기업의 범죄의혹에 대해서도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 대한 수사와 일반 시민에 대한 수사가 달라서는 안 된다.

이번 편지를 계기로 ‘힘없는 피의자’를 함부로 대한 과거 관행에 대해 고백하는 검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검찰의 이런 참회가 열매를 맺어, 편지를 보낼 필요조차 없는 시대가 하루빨리 열려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주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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