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61>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평원성에서 여기까지 200리 길을 달려오는 동안 장군이 이끈 기마대가 가장 덜 지쳤을 것이니, 이곳 역하에서의 첫 싸움은 장군이 앞서 주시오. 장군은 기마대를 이끌고 앞장서 성 밖에 진을 친 거기장군 화무상(車騎將軍 華無傷)의 군사를 들이치시오. 먼저 그 기마대와 거기(車騎)를 찾아 흩어버린 뒤에 중군(中軍)을 짓밟고 군막을 불태워 적군의 얼을 빼놓아야 하오.”

이어 한신은 조참을 불러 일렀다.

“나는 본대를 이끌고 기장(騎將) 관영의 뒤를 받쳐주며 화무상의 진채를 휩쓸어버릴 것이오. 장군은 날랜 보갑(步甲)을 이끌고 먼저 가서 적의 뒤를 끊어 주시오. 적병이 성안으로 쫓겨 가 전해의 농성을 돕거나 임치로 달아나 제왕(齊王)에게 힘을 보태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되오.”

그리고는 조참을 재촉해 먼저 보낸 뒤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전군을 움직였다. 한신이 관영의 기마대를 앞세워 역성(歷城)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제군(齊軍)을 벼락같이 들이치자, 평원성과 마찬가지로 파수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깊은 새벽잠에 빠져 있던 화무상의 진채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갑옷투구를 걸치기는커녕 창칼조차 제대로 찾아 쥐지 못하고 허둥댔다. 먼저 뛰어든 게 관영의 기마대라 그 속도와 타격의 맹렬함이 더욱 제나라 군사들을 놀라고 겁먹게 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관영의 군사들은 무인지경 가듯 화무상의 진채를 휩쓸다가, 중군인 듯싶은 곳을 되풀이 오가며 짓밟아 제나라 군사들의 얼을 빼놓았다. 그러더니 마장(馬場)을 찾아 제나라 군사들의 싸움 말을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군막 여기저기에 불을 질렀다. 일이 그리 되자 제나라 군사들의 진채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하지만 화무상이 그래도 명색 거기장군이었다. 그 황망한 중에도 싸움수레 여남은 채와 100여 마리 싸움 말을 거두어 기마대를 이루고 관영을 막아보려 했다. 그때 다시 한신이 이끄는 한군 본대가 요란한 함성과 함께 제나라군의 진채를 덮쳐 왔다. 놀라 잠에서 깨어난 제나라 군사들에게는 그저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의 홍수로만 보였다.

“모두 항복하라. 항복하면 해치지 않는다.”

“너희 임금과 재상이 모두 한왕께 항복했으니, 너희도 창칼을 내려놓고 우리를 맞으라.”

한신이 군사들을 시켜 그렇게 외치게 했다. 그러지 않아도 겁먹고 놀라 허둥대던 제나라 군사들은 그 소리에 더욱 머릿속이 헷갈려 어찌할 줄을 몰랐다. 멍하니 밀려오는 한군을 바라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뒤돌아서서 냅다 뛰거나, 창칼을 내던지고 털썩털썩 땅에 퍼질러 앉았다.

기마대를 모아 어떻게 전세를 되돌려 보려던 화무상도 그 꼴을 보고는 기가 꺾였다. 관영의 군사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관영이 그런 화무상을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뒤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달아나는 적 기마를 쫓아라. 한 기(騎)도 놓아 보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앞장서 화무상을 뒤쫓으며 무섭게 꾸짖었다.

“적장은 어디로 달아나느냐?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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