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기마대를 이끌고 가만히 북쪽으로 돌아 역성 북문 쪽 제수(濟水) 가로 가시오. 말에는 재갈을 물리고 발굽은 헝겊으로 싸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야 하오. 그러다가 삼경이 되거든 크게 횃불을 밝히고 북문 쪽으로 다가 가시오. 임치에서 온 원병이 그리하면 역성 쪽에서도 마중을 나가 그들을 성안으로 맞아들이겠다고 저들의 사자(使者)가 지닌 서신에 쓰여 있었소. 그리하여 적이 마중을 나오거든 장군은 가차 없이 그들을 들이치시오. 나도 한 갈래 군사를 보내 길을 끊어 그들이 성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겠소. 그렇게만 되면 원병은커녕 성안의 군사만 적지 아니 줄어 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오.”
그런 다음 다시 조참을 불러 말하였다.
“장군은 휘하 장졸들을 데리고 남문으로 들어가시오. 삼경 무렵 북문에 이어 동문 쪽이 시끄럽거든 한꺼번에 대군을 밀어붙여 남문을 치면 되오. 아마도 적군은 북문을 나갔다가 앞뒤로 치이고, 동문에서 우리에게 속아 어지러워져 남문 쪽에는 그리 많은 군민(軍民)을 보낼 수 없을 것이오. 장군은 되도록 빨리 남문을 열어젖혀 성안을 휘저어 놓으시오.”
그리고 자신은 그대로 동문에 눌러앉아 또 다른 계책을 펼쳤다. 곧 항복한 화무상의 군대에게서 얻은 기치와 복색으로 한 갈래 제나라 군사를 꾸민 일이 그랬다. 먼저 그들을 동쪽으로 보낸 뒤 삼경 무렵 제나라 원병인 양 한신의 진채를 뒤에서 급습하게 한다. 그리고 한신이 기습에 못 견디는 척하며 길을 열어주면, 곧장 동문 아래로 달려가 성안의 제나라 군사를 속여 성문을 열게 한다는 계책이었다.
그날 밤 삼경이 되었다. 전해는 사자에게 주어 보낸 서신이 한신의 손에 들어간지도 모르고 눈 빠지게 원병을 기다리다가 북쪽 제수 가의 밤하늘이 훤할 만큼 횃불이 타오르는 걸 보고 몹시 기뻐했다.
“드디어 임치에서 원병이 왔다. 적이 가로막을지 모르니 어서 마중 나가 저들을 성안으로 데려오라.”
전해가 그런 말과 함께 군사 1만을 떼어 북문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뜻밖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속았습니다. 제수 가에서 다가온 것은 임치에서 온 우리 원병이 아니었습니다. 성을 나갔던 우리 군사는 적의 속임수에 빠져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시 동문 쪽이 소란하더니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동문 쪽에서 병장기 부딪는 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게 아무래도 크게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북문 쪽의 일로 멍해져 있던 전해는 그 말을 듣고 동문 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문루 위에서 내려다 보니 정말로 어둠 속에서 창칼이 부딪고 사람의 외마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어둠 속을 살펴보아도 한쪽은 성을 에워싸고 있던 한나라 군사들일 것이란 추측뿐, 다른 한쪽은 어디 군사인지 영 알 길이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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