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쥐새끼 같은 장돌뱅이 놈이 또 꼬리를 사리고 달아나 버렸구나. 어서 사람을 풀어 유방이 어디 숨었는지 알아보아라.”
그리고는 형양성으로 군사를 몰았다. 얼마 가지 않아 형양성 쪽에서 부옇게 먼지가 일며 한 갈래의 인마가 달려왔다. 패왕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마중을 나온 종리매의 군사였다.
“대왕께서 한군을 쳐부수고 신이 뒤에서 길을 끊으면 이번에는 유방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실로 아깝습니다. 유방은 이제 달아나는 데도 이력이 붙은 듯합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몸소 달려온 종리매도 분한 듯 씨근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패왕과 종리매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형양성 동문으로 들 무렵이었다. 그새 한왕의 자취를 알아낸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한왕 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유방이 광무산으로 갔다고?”
패왕이 뜻밖이라는 듯 그렇게 물었다. 용저가 옆에서 제 짐작대로 말했다.
“대왕의 위엄에 겁을 먹은 한왕이 광무산성을 지키는 번쾌에게로 달아난 듯합니다.”
그러자 패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유방은 이제 독안에 든 쥐다. 내 전에도 광무산성이 손톱 밑의 가시처럼 거슬렸으나 보잘것없는 성 하나에 대군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길만 앗으면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유방이 그리로 갔다 하니 광무산성은 전군을 몰아 깨뜨려 볼 만한 독이 됐다. 모두 그리로 쳐들어가 유방을 사로잡고 이번에는 싸움을 끝내도록 하자.”
그때 계포가 패왕의 옷깃을 잡듯 하며 조심스레 일깨웠다.
“한왕이 비루하고 겁 많기는 하지만 또한 장돌뱅이로 여러 해 저자 바닥을 헤매 눈치가 빠르고 남과 나를 아울러 잘 압니다. 거기다가 장량과 진평이 곁에 붙어 있으니 그리 지각없이 군사를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군을 가볍게 보아 함부로 대군을 광무산으로 몰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다면 광무산으로 가지 않았단 말인가?”
패왕이 못마땅한 눈길로 계포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군의 기세로 이어질 패왕의 호기에 찬물을 끼얹은 잘못을 눈길로 나무라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계포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지낼 때였다. 패왕의 눈길에 속으로 움찔했으나 내친김이라 그대로 속을 털어놓았다.
“한왕이 광무산으로 간다 해도 번쾌가 지키는 산성으로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성은 한왕이 이끈 대군이 들어앉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너무 내려앉아 있어 지키기에도 그리 좋은 곳이 못됩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한왕이 군사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갔다면 아마도 서광무(西廣武) 봉우리에 올라타고 산성을 발치의 보루로 삼으며 혈창(穴倉)의 곡식으로 군량을 삼을 듯합니다. 그리 되면 설령 대왕께서 대군을 이끌고 가신다 해도 한왕에게 지리(地利)를 잃어 자칫하면 낭패를 겪게 될 것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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