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99>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 천하의 일은 아직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얻기 어려운 볼모를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한왕의 말대로,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자신의 집안을 돌보지 않는 법, 저 늙은이를 죽인다고 대왕께 이로울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비 잃은 원한에 죽기로 덤비면 대왕께 크게 화를 더할 뿐입니다.”

패왕은 전에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항백의 말을 듣고 패공 유방을 살려주었다가 몹시 후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끊임없이 그 잘못을 일깨워주던 범증은 벌써 죽고, 항백은 살아남아 자잘한 충성으로 거듭하여 믿음을 사니, 패왕도 차츰 그 후회에서 헤어났다. 거기다가 종성(宗姓)인 항씨(項氏)들에 대한 유별난 편애도 패왕으로 하여금 항백의 말을 따르게 했다.

“좋다. 우선 이 늙은 것을 다시 군막에 가두어라. 내 저 애비 어미도 돌보지 않는 짐승 같은 장돌뱅이놈까지 사로잡은 뒤에 가마솥에 함께 삶으리라.”

한참을 씨근거리며 속을 가라앉힌 패왕이 이윽고 그런 명을 내려 태공(太公)을 다시 망보기 수레(巢櫓)에서 풀어 내렸다. 그러나 제 할 말만 마치고 자신의 진채로 돌아가 버린 한왕 유방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내밀어 태공의 안위를 살피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짚어 보고 싶은 것은 이 일을 통해 드러나는 한왕 유방의 특이한 개성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도 지난날 수수(휴水)강변에서 패왕에게 쫓길 때 효혜태자와 노원공주를 수레에서 내던졌던 그 결단과 같은 것으로 본다. 곧 천하를 공변된 것으로 여길(天下爲公) 뿐만 아니라, 자신을 또한 그 천하의 임자로 키워 사사로움을 버리는, 천하의 임금노릇 하는 자(王者)로서의 비정한 결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뒷날 한 고조(漢 高祖)가 된 유방이 태공을 태상황(太上皇)에 봉해가며 극진하게 모신 걸 보면 반드시 그 결단이 아들딸을 적진에 내버릴 때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날 한왕이 비정하게 태공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천하를 위해서는 가족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공리(公理)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그게 자신과 태공이 아울러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날 한왕이 태공을 살리기 위해 패왕에게 항복했더라면 둘 모두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패왕이 태공까지 끌어내도 한왕 유방에게 별 위협이 못되자 동서 광무의 양군 진채는 다시 팽팽하지만 지루한 대치에 들어갔다. 어쩌다 해가 돋고 날이 풀리면 진채 밖으로 나온 병졸들이 광무간을 사이에 두고 욕설이나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사이 섣달이 다하고 봄 정월로 접어들었다. 싸움 없이 한 달 가까이 지나자 좀이 쑤셨는지 패왕이 다시 나와 싸움을 걸었다.

“한왕 유방은 어디 있느냐? 유방은 어서 나와 과인의 말을 들어라!”

패왕이 광무간 저쪽에서 한군 진채로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질러 한왕을 찾았다. 한참이나 듣고만 있던 한왕이 마지못해 진문 밖으로 나가 패왕과 마주섰다.

“아우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아비 삶은 국을 나눠먹자는 얘기는 아니겠지?”

한왕이 그렇게 이죽거려 패왕의 심사부터 건드려 놓았다. 그 말에 패왕의 눈길이 사나워졌으나 이내 평온을 되찾더니, 어울리지 않게 달래는 말투가 되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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