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0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이상하다. 틀림없이 가슴께로 날아간 것 같은데 발가락을 맞혔다니. 그만한 거리에서 그만큼 강한 쇠뇌로 그토록 오래 정성들여 겨냥해 쏘았는데 빗나가다니…. 게다가 유방은 진채 안으로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갔지만 그 뒤 한 식경이 되도록 꼼짝도 않고 있다. 한군 진채가 쥐 죽은 듯 고요한 것도 수상쩍다. 어쩌면 저 능구렁이 같고 여우 같은 유방이 무슨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수작을 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 때까지도 유방의 움직임이 없으면 오늘밤 서(西)광무를 들이쳐 보자. 만약 우리 쇠뇌가 정말로 유방을 맞힌 거라면, 싸움은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야습을 준비시키려는데 갑자기 서광무 쪽 한군 진채에서 크게 함성이 일었다.

군막을 나간 패왕은 함성으로 시끄러운 광무간 건너편 한군 진채를 살펴보았다. 한왕이 번쩍이는 투구에 갑옷까지 걸치고 말에 올라 서광무 꼭대기의 이곳저곳을 오락가락하며 손을 들어 군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었다. 말안장에 꼿꼿이 앉은 걸 보니 화살에 가슴을 상한 사람 같은 데가 조금도 없었다. 서광무 곳곳에 진채를 벌이고 있던 한나라 장졸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시에 활기를 되찾아 그런 한왕 쪽을 올려보며 연방 깃발을 흔들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걸 보자 패왕은 다시 맥이 빠졌다.

‘역시 쇠뇌의 살이 빗나갔구나. 그렇다면 오늘 밤의 야습도 틀렸다. 억지를 부려봤자 공연히 군사만 다칠 뿐이다.’

한편 한왕 유방은 고통과 오한으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 또한 피와 살로 된 인간이었다. 두 각(刻)이 가까워 오자 눈앞이 흐릿해지며 자꾸 고개가 꺾여 왔다.

“이제 날이 저무느냐?”

한왕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고삐를 잡고 군사에게 물었다. 군사가 사방을 둘러보고 대답했다.

“해는 졌습니다.”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채 안으로 돌아가자.”

한왕이 다시 그렇게 말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말고삐를 잡은 군사가 말을 천천히 진채 안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말이 진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한왕의 고개가 먼저 꺾였다. 멀리서 알아볼 수 없게 안장에 등받이를 세워 한왕의 몸을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늘 그랬듯 한왕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장량은 초나라 군사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 이르러서야 한왕을 말에서 부축해 내리게 했다. 한왕은 다시 정신을 잃은 채 약한 숨결만 내뱉고 있었다. 군막으로 한왕을 옮긴 장량은 갑옷투구를 벗기고 자리에 눕히게 한 뒤 군중(軍中)에 있는 의자(醫者)를 불러 보살피게 했다. 의자가 그제야 화살촉을 뽑고 상처에 고약을 이겨 발랐지만 한왕은 그로부터 사흘 낮밤이나 미음 한 술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펄펄 끓는 몸으로 앓아야 했다. 진작 손을 쓰지 않고 무리하게 진채를 돌아본 게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한왕의 상처를 덧나게 한 것 같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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