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은 국가 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실재(實在)한 게 아니라 서클 형태의 모임이었으며 민청학련은 유신정권 타도에 나선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이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인혁당 재건위도 실제 있었던 게 아니고 고문을 통해 조작됐으며, 변조된 공판조서가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규정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고문 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서울지검도 이를 알고 처음에는 ‘기소 불가’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정권 차원의 강압으로 사건 관련자들이 재판에 회부됐고 법원의 ‘사법 살인’으로 이어졌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18시간 만에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유신정권의 국가 폭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과 유족, 수사 과정에서 온갖 고문을 받은 피해자들이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 회복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당시 국가 폭력을 주도한 핵심 관계자와 이를 막지 못한 사법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엄격한 자아비판이 있어야 한다.
다만, 과거사위는 강제 조사를 할 수 없는 데다 관련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도 명백한 증거에 입각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건대’ 식의 결론을 내린 부분이 없지 않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게 된다. 지난주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도 구성에서부터 순수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과거사위가 ‘정해진 결론’을 내린다면 언젠가 다시 청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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