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9>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5일 03시 03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지금 한왕과 항왕의 명운은 모두 그대(족하·足下)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대가 한나라를 편들면 한나라가 이길 것이요, 초나라를 편들면 초나라가 이기게 될 것입니다. 신(臣)은 이제 속마음을 터놓고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 하거니와, 참으로 걱정스러운 바는 그대가 그 계책을 써주지 않는 것입니다.”

괴철은 스스로 신(臣)이라 일컬으면서도 제왕 한신에게 그대라는 호칭을 써 자신이 내놓으려 하는 계책에 무게를 더하였다. 한신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말해 보시오. 그게 어떤 계책이오?”

“한나라와 초나라를 함께 이롭게 하고 두 임금을 모두 살려,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 그 하나를 차지하는 계책입니다. 한왕과 항왕에다 그대까지 세 세력이 솥발(정족·鼎足)처럼 버티어 서면 어느 편에서도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그대처럼 밝고 어진 사람이 수많은 갑병(甲兵)을 거느리고 강대한 제나라에 의지하여 연나라와 조나라를 따르게 한 뒤, 주인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들 두 나라의 뒤를 제압한다면 안 될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런 다음 다시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나아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을 끝내게 함으로써 싸움터에서 스러질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준다면, 천하는 바람처럼 그대에게 달려올 것이요,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그런 그대의 명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큰 나라는 나누어지고, 강한 나라는 약해져 새로운 제후를 많이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후들이 서면 그곳 백성들은 그 명을 따를 것이요, 그 제후들은 그렇게 된 은덕을 제나라에 돌릴 것입니다. 그때 그대는 교하(膠河)와 사수(泗水) 인근이 옛 제나라 땅임을 내세워 그곳에 자리 잡고 덕으로 제후들을 달래고 끌어들이십시오. 공손히 두 손 모아 읍하면서 겸양의 예를 지키면, 천하의 군왕들이 서로 사람들을 끌고 와서 그대의 제나라에 입조(入朝)할 것입니다.”

괴철이 거기까지 말하자 낯빛이 변해 듣고 있던 한신이 두 손을 내저어 괴철을 말리며 말했다.

“선생, 그만 하시오. 항왕이 비록 과인을 제대로 써주지 않았으나 그래도 한때 과인이 주군으로 모셨던 사람이외다. 또 한왕은 과인을 대장군으로 세웠고, 지금은 제나라의 왕위에까지 올려 주신 엄연한 과인의 주군이외다. 어찌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툴 수가 있겠소? 특히 한왕께 맞서는 것은 그 대장군이었던 내게는 바로 반역이 되니, 선생은 이제 과인에게 반역을 권하고 있는 것이오?”

한신은 정말로 두렵고 걱정스러운 듯했다. 괴철의 얼굴이 갑자기 굳고 어두워졌다.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나무람을 듣게 되고(천여불취 반수기구·天與弗取 反受其咎) 때가 이르렀는데 결행하지 못하면 거꾸로 그 재앙을 입게 된다(시지불행 반수기앙·時至不行 反受其殃)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그대는 깊이 헤아려 계책을 고르십시오.”

그렇게 결연히 말하고는 나무라는 듯한 눈길로 한신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신도 그 같은 괴철의 권유에 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더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그 말을 받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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