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콤은 특허권 침해 등 법적 대응에 나서려고 했지만 중국의 제조업체가 어느 곳인지, 어떤 경로로 수입됐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한국 기업들은 중국산 ‘짝퉁’ 제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 기업의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세계 시장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한국 제품 베끼기가 성행하고 있다. 또 중국 내 현지 공장을 통한 한국 제품의 기술 유출도 ‘짝퉁’ 제품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유령’과의 싸움=중국 기업을 상대로 한 상표권 침해 소송에 참가했던 한 변호사는 “꼭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어느 회사가 짝퉁 제품을 생산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파악해서 소송을 내더라도 중국 정부와 사법부의 지적재산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
중국뿐만이 아니다. LG전자는 몇 년 전부터 중동의 아랍 국가에서 LG 상표를 도용한 에어컨 제품을 발견했지만 ‘Made in China’라는 원산지 표시 외에는 제조업체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레인콤 관계자는 “현지 제조업체들은 지적재산권 침해 등 법적 문제가 불거지면 영업장을 폐쇄한 뒤 다른 상호를 내걸고 다시 짝퉁 제품을 생산한다”며 “이 때문에 침해 업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해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중국=GM대우는 ‘마티즈2’를 베낀 중국 체리자동차를 상대로 ‘불공정경쟁법 위반’ 소송을 냈다가 최근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GM대우 관계자는 “소송이 두 회사 모두에 득이 되지 않아 합의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GM대우는 소송 초기 단계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중국 사회 전반의 인식 부족에 당황했다고 한다. 중국 상무부에서 지적재산권을 담당하는 관리는 “GM대우가 마티즈2에 대한 중국 특허 신청에 실패했다”며 짝퉁 소송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비난했다.
차이나 데일리는 “GM대우가 체리자동차를 디자인 도용이라는 ‘근거가 의심스러운 주장’으로 고소했다”고 보도했다.
LG경제연구원 은종학 선임연구원은 ‘중국 지적재산권 보호의 실제’라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지적재산권 문제를 개인의 권리 보호라는 ‘사법(私法)’적 차원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이익 수호라는 ‘공법(公法)’적 차원에서 다룬다”고 밝혔다.
은 연구원은 “이런 ‘국가 중심적 법 집행’이 자리 잡은 중국에서 지적재산권 침해를 당한 외국의 경제 주체가 법을 통해 구제받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변화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중국 국가지적재산권국은 내년 후반을 목표로 지난달부터 지적재산권에 관한 국가 정책을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법원이 최근 내린 판결에서도 달라진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 법원은 ‘Hongda’라는 상호를 사용한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해 일본 혼다(Honda) 자동차회사에 147만 위안(약 1억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은 연구원은 “최근 중국 정부가 외자 유치와 자국 기업의 지적재산 축적, 지식 집약형 산업의 전략적 육성 등을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法으로 이겼다▼
지적재산권 보호의 불모지로 인식돼 온 중국에서 최근 한국 기업의 연이은 승전보가 들려 왔다.
LG전자는 10월 슬림형 에어컨과 액자형 에어컨 디자인을 모방한 중국 하이난사와 특허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했다. 중국 법원이 이를 중재했다.
LG전자 관계자는 “2년여의 시간을 걸려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냈는데 하이난사가 항소했다가 결국 항복했다”며 “중국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송이라는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국내 로펌 관계자들은 대기업인 LG전자가 승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의 경우 중국 정부와의 사업관계를 고려해 소송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소송을 내도 결과도 좋지 않아 법적 분쟁을 피해 왔기 때문이다.
국내의 영세한 한 캐릭터 개발업체도 소송제기 1년 만에 중국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씨엘코 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중국 기업과 캐릭터 ‘마시마로’(사진) 판권 분쟁을 마무리 지었다.
중국의 한 중소기업이 마시마로 가맹점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한국 판권업체 몰래 중국에 상표권 등록을 해 버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중국 인민법원은 지난달 중국 기업에 대해 30만 위안(약 39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한국로펌 中진출 잇달아▼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에 맞춰 한국 로펌(법률회사)의 중국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이달 12일 중국 정부로부터 사무소 설치를 허가한다는 비공식 통보를 받았다. 지평은 내년 3월경 상하이(上海)에 사무소를 열 계획이다. 이미 중국에 진출한 대륙, 태평양, 광장까지 합하면 모두 5곳.
한국 로펌 중국 사무소가 하는 업무는 크게 세 가지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의 투자 자문(중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 자문 포함), 반덤핑이나 식품 안전 기준을 둘러싼 마찰 등과 관련한 통상 자문,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다.
지평은 중국 내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와 중국 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 참여, 중국 은행이 보유한 중국 기업 부실채권의 매입 등에 대한 자문에 주력할 계획이다.
태평양의 표인수(表仁洙) 변호사는 “현재 사무소가 있는 베이징(北京)은 중국의 정부 부처와 대기업 본사가 있는 곳”이라며 “기업 투자 자문 등에 주력하기 위해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에도 사무실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 법에 따르면 한국 변호사의 중국법 관련 자문과 소송 업무를 위한 중국 변호사 고용이 금지돼 있지만 간접적으론 소송 업무 지원이 가능하다.
광장의 이태희(李泰熙) 대표변호사는 “중국이 아직 법률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로펌이 중국 내에서의 소송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지만 분쟁이 생겼을 경우에는 중국 사무소를 통해 한국 기업을 중국 내 로펌과 연결시켜 주고 소송을 지원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사무소가 중국 법률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한국 로펌 중국 진출 현황 | ||
로펌 | 진출 시기/사무소 소재 지역 | 규모(상주 변호사 수) |
대륙 | 2003년 5월/상하이 | 한국 변호사 1명, 중국 변호사(율사) 5명 |
태평양 | 2004년 10월/베이징 | 한국 변호사 3명, 중국 변호사 3명 |
광장 | 2005년 9월/베이징 | 한국 변호사 2명, 중국 변호사 1명 |
세종 | 2005년 12월/베이징 | 한국 변호사 2명 |
지평 | 2006년 3월(개설 예정)/상하이 | 한국 변호사 2명 |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