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2>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선생께서는 대체 과인에게 무슨 가르침을 내리시려는 것이오?”

괴철이 말을 어지럽게 돌려 하자 한신이 말허리를 자르며 가만히 물었다. 그래도 괴철은 해 온 말투를 바꾸지 않고 이어갔다.

“무릇 말 기르는 일 따위에 마음을 쏟는 자는 천자의 권위를 잃게 되고(부수시양지역자 실만승지권·夫隨시養之役者 失萬乘之權), 한두 섬의 봉록이나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경상(卿相)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다(수담석지록자 궐경상지위·守담石之祿者 闕卿相之位)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일을 결단하는 힘이 되며 의심은 일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입니다. 터럭같이 작은 일이나 꼼꼼하게 헤아리고 있다 보면 천하대세를 잊어버리며, 깊이 헤아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단하여 감행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범이라도 머뭇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이 쏘는 것만도 못하고, 아무리 준마라도 닫지 않으면 늙고 느린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다. 맹분(孟賁)과 같은 용사도 쓸데없는 의심으로 망설이기만 한다면 어린아이가 일을 내는 것보다 못하고, 순임금이나 우임금 같은 지혜가 있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

이것은 무엇이든 결단하여 실행함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무릇 공은 이루기는 어려워도 그르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습니다(부공자난성이이패 시자난치이이실·夫功者難成而易敗 時者難値而易失). 좋은 때를 만나기는 두 번 다시 어려우니 그대는 부디 넓게 살펴 결단하십시오.”

그제야 한신은 괴철이 하려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한신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선생의 간곡한 뜻은 알겠으나 과인은 차마 한왕을 저버릴 수가 없소. 한왕도 또한 그러할 것이오. 과인이 이제까지 그를 위해 세운 공이 적지 않은데 설마 과인에게 이미 내린 것을 도로 거두어 가기야 하겠소?”

그러면서 괴철의 권유를 물리쳤다. 괴철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한신을 찾아갔으나 끝내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 지지 않자 깊이 탄식했다.

‘제왕(齊王) 한신은 반드시 한왕에게 사로잡혀 욕스럽게 죽으리라. 그런데 이 며칠 내가 한신에게 하는 말을 엿들은 사람이 적지 않으니, 그가 죽게 되면 틀림없이 내가 그를 부추긴 것도 드러날 것이다. 한신이 죽는 거야 망설이고 머뭇거린 죄라 해도 나는 이게 무슨 꼴이냐. 어리석은 사냥개를 깨우쳐 주다가 간사한 토끼가 죽은 뒤에는 나까지 그 사냥개와 함께 삶기게 되었구나.’

그러다가 괴철은 갑자기 미친 시늉을 했다. 임치 성안을 히죽거리고 돌아다니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다가 갑자기 울고 웃고 하며 사람들을 속였다. 나중에는 무병(巫病)이 든 양 점도 쳐주고 푸닥거리까지 해 주더니 어느 날 임치성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괴철 선생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을 풀어 찾아볼까요?”

한신이 괴철을 아끼는 것을 잘 아는 장수가 한신을 찾아와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것 없다. 괴철은 과인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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