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51>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29일 03시 01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 유방이 성고 성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 패왕이 전력을 모아 성고성을 들이쳐 보는 것도 한왕을 사로잡아 전국(戰局)을 유리하게 돌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머뭇거리는 사이에 제나라의 사신이 달려옴으로써 패왕은 그 기회를 잃고 말았다. 용저가 제나라를 구하기 위해 5만 군사를 빼내간 뒤로 초군의 압도적 우세는 두 번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패왕에 비해 그 열 달 한군은 계속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먼저 관중으로 돌아간 한왕이 보름도 안 돼 군사 1만을 이끌고 나와 성고 성에 보태더니 다시 보름도 안 돼 소하가 보낸 2만 군사가 광무산에 이르렀다. 그리고 2월에는 제왕이 된 한신이 장량에게 1만 군사를 딸려 보내 서(西)광무에 더했다.

물론 패왕도 그동안 두 손 묶어 놓고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밀이 익어가면서 군량이 여유가 생기자 패왕은 곧 이전의 투지와 자신감을 되찾았다. 패왕은 먼저 팽성에 사람을 보내 그곳을 지키는 계포와 항타에게 더 많은 군사와 물자를 보내주기를 재촉하는 한편, 날카롭게 변화를 살피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을 흔들어볼 전기(戰機)를 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별난 패왕의 전투 감각이 무리한 출격을 막았다. 그 사이 한군의 세력은 초나라가 형양에 있는 종리매의 군사들까지 다 동광무로 긁어모은다 해도 스스로 지켜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부풀어 있었다. 거기다가 그때는 이미 패왕에게도, 초나라 장졸에게도 3만 군사로 하루 아홉 번의 싸움을 치르며 왕리(王離)의 20만 군을 쳐부수던 거록(鉅鹿)의 기세와 투지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괴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한군은 또 한번 부풀어 올랐다. 6월에 무관을 지키던 왕릉이 군사 1만을 이끌고 오창 남쪽에 진채를 벌였고, 8월에 접어들기 바쁘게 북맥(北貊) 기마대와 연나라 군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왕을 도우러 왔다. 거기다가 양 땅에서는 팽월이 다시 노관과 함께 양도를 끊고, 구강에서는 경포가 유고와 손잡고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떻게 보면 패왕 항우의 비극은 진나라 말의 왕조교체기에서 전투력이 정치적인 역량보다 우위였던 국면이 끝나면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관중에서 나온 뒤의 지난 3년은 패왕의 눈부신 전투력이 획득했던 모든 것을 정치력의 부재로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패왕은 아직도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뿐, 자신이 무엇을 왜 잃고 있는지 뚜렷이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해 8월 중순 패왕에게도 드물게 기쁜 일이 있었다. 팽성에 가 있던 계포가 주국(柱國) 항타(項타)에게 팽성을 맡기고 1만 군사와 더불어 쌀 3000곡(斛)을 운반해 왔다. 초나라 군사들로 보아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있게 되는 병력증강이요, 넉넉한 군량 보급이었다. 육고가 패왕을 찾아간 것은 그 때문에 동광무 진채가 한창 들떠 있을 때였다.

“한왕의 사신이라고? 내일이면 모두 사로잡혀 땅에 묻힐 놈들이 사신은 무슨 놈의 사신이냐? 흠씬 두들겨 내쫓아 버려라!”

육고가 왔다는 말을 듣자 다시 천길 만길 호기가 치솟은 패왕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 계포가 가만히 패왕을 말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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