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56>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02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동광무의 초군 진채와는 달리 서광무의 한군 쪽은 그 며칠 사이에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기세가 살아났다. 그리하여 강한 적군에게 에워싸여 있는 답답함과 억눌린 느낌이 차츰 은근한 사기로 바뀌고 있는데, 다시 산 아래 왕릉의 진채에서 뜻밖의 전갈이 왔다.

“옹치(雍齒)가 군사 500명을 이끌고 항왕에게서 달아나 신의 진중으로 찾아왔습니다. 지난날 대왕께 거역한 일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고 있습니다.”

옹치란 이름을 듣는 순간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가슴에는 그대로 활활 불길이 이는 듯하고 얼굴의 살점이 떨려 왔다. 돌이켜 볼수록 끔찍한 악연(惡緣)이었다.

패현 저잣거리를 떠돌던 무렵부터 옹치는 한왕에게 숨어있는 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저잣거리 건달들이 한왕의 기이한 풍채나 출생의 신비 같은 것에 하나같이 감탄할 때도 옹치는 싸늘하게 비웃음으로 쏘아볼 뿐이었고, 가깝게 둘러싼 무리 모두가 한왕의 너그러움이나 알지 못할 기품에 고개 숙일 때에도 옹치만은 빳빳이 머리를 쳐들고 그 무리를 겉돌았다. 왕릉은 하늘같이 여기면서도 한왕은 손위인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왕이 패공(沛公)에 추대되자 옹치는 겨우 그 밑에 드는 시늉을 했으나, 그 시늉마저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왕이 믿고 맡긴 풍읍(豊邑)을 들고 위나라에 항복해 버려 천하를 향해 내닫던 한왕의 불같은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풍읍을 되찾으려는 한왕을 그렇게 격분하게 만들던 옹치의 집요하고도 간교한 저항. 그 밉살맞은 옹치를 잡기 위해 한왕은 마음에도 없는 경구(景駒)를 찾아가고 스스로 항량(項梁) 밑에 드는 굴절을 겪어야 했다.

한왕이 항량의 군사를 빌려 풍읍을 되찾은 뒤에도 옹치의 저주는 이어졌다. 위표(魏豹)에게로 달아났다가 위표와 함께 패왕 밑에 들게 된 옹치는 한왕이 몰리던 지난 3년 내내 무슨 악몽처럼 곳곳에서 나타나 괴롭혔다. 한왕이 수수(휴水) 가에서 쫓길 때 초나라 장졸들을 이끌고 앞장서 뒤쫓은 것도 옹치였고, 패왕이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를 사로잡으려 군사를 풍읍으로 보냈을 때 그 길라잡이 노릇을 한 것도 옹치였다. 한왕이 형양과 성고를 오락가락하며 어렵게 버티던 시절뿐만 아니라 광무산에 갇혀 보낸 지난 1년도 옹치는 얼마나 자주 악몽과도 같은 그 모습을 초군 선두에 나타내어 한왕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던가.

“어떻게 할까요?”

한왕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자 왕릉의 사자가 기다리다 못해 그렇게 물었다. 퍼뜩 정신이 든 한왕은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피는 눈길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량과 진평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다른 장수들도 궁금하게 여기는 눈치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런 그들을 보자 그때까지의 격렬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자각이 한왕을 일깨웠다.

‘나는 저들의 임금이다. 이 세상 모두의 것(공기·公器)이라는 천하를 다투려 한다.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어찌 공변된 천하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자각이 그동안의 치열한 원혐과 분노까지 한꺼번에 씻어내지는 못했다.

“옹치를 당분간 왕릉 장군의 진채에 머무르게 하여 과인의 눈에 띄게 하지 말라. 그리고 옹치에게도 일러라. 공을 세워 죄를 씻은 뒤에야 과인을 볼 수 있으리라고.”

겨우 그와 같은 절충으로 옹치를 받아들였으나, 그때 이미 한왕에게는 왠지 환하게 밝아 오는 동녘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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