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59>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렇다면 홍구 동쪽은 이미 초나라 땅이거나 항왕이 힘으로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과인이 그걸 준다고 항왕이 비싼 인질을 내놓고 과인과 화평을 맺겠는가?”

한왕 유방이 들을수록 의심쩍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후공이 오히려 차분해진 목소리로 한왕의 물음을 받았다.

“얼른 보아서는 대왕의 말씀과 같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 동북의 조(趙) 연(燕) 제(齊)는 모두 대왕께서 세우셨거나 대왕께 항복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고, 가운데 양(梁) 땅은 팽월이 휘젓고 다니고 있으며, 남쪽 구강(九江)도 경포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거기다가 동쪽 하비에는 또 관영이 팽성을 엿보며 기세를 떨치고 있으니 결코 항왕의 다스림 아래 있는 땅이 못됩니다. 대왕께서 홍구(鴻溝) 이동의 땅을 내놓겠다는 말에는 제왕(齊王) 한신과 조왕(趙王) 장이를 불러들이고, 연왕(燕王) 장도와 양(梁) 상국 팽월, 회남왕(淮南王) 경포를 단속하겠다는 약조가 담겨 있는 셈이라 항왕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 땅은 애초부터 항왕이 차지하고 있던 것이었다. 항왕의 끝 모를 자만으로 보아, 겨우 원래의 제 것을 되찾기 위해 두 번 다시 잡기 어려운 귀한 볼모까지 내놓고 화평을 맺는 것이 당키나 하겠는가?”

한왕이 다시 무슨 심술이나 부리는 것처럼 후공에게 그렇게 따져 물었다.

“그래도 군왕의 체면을 지킬 만한 구실은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거간꾼에게는 거간꾼의 수단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간꾼의 수단이라…. 그래 후공은 거간으로 어떤 수단을 부릴 작정인가?”

그제야 한왕도 조금씩 기대하는 눈빛을 드러내며 물었다. 후성이 서두르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속임수와 감추거나 부풀리는 것만이 거간꾼의 수단은 아닙니다. 올곧게 알려 주고 일깨우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곧게 알려 주고 일깨운다고?”

“그렇습니다. 항왕이 반드시 대왕의 흥정을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워 줄 작정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항왕이 지금 같은 형세로 이곳에 머물기를 고집하면 죽을 길밖에 없고, 대왕의 흥정을 받아들여 동쪽으로 물러나면 살길이 열릴뿐더러 다시 대왕과 천하를 다투어 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곧 초나라 군사는 여기서 억지로 버티다가는 천천히 말라죽어갈 뿐이지만, 돌아가 대오를 정비하고 양도(糧道)를 확보하면 이내 옛날의 눈부신 전투력을 회복하여 홍구 서쪽의 땅을 다시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그 일을 항왕에게 일깨워 주려 합니다. 아무리 우직한 항왕이라도 그 뜻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후공의 그와 같은 말에 한왕은 갑자기 가슴이 섬뜩하였다. 패왕이 후공의 말을 따라 물러났다가 다시 힘을 기른 뒤에 관중으로 밀고 든다면 그때는 정말로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급한 일은 볼모로 잡혀 있는 부모와 아내를 되찾고 코앞에 들이댄 듯한 패왕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었다. 후공만이 그 일을 해낼 것 같아 마지못해 사자로 삼았으나, 마음 한구석은 왠지 개운치 못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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