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62>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11일 03시 12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말을 마친 후공은 패왕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상복을 훌훌 벗어던지며 이제 막 끓기 시작하는 가마솥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 후공을 오히려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 것은 패왕이었다.

“멈춰라. 너는 아직도 과인에게 할 말을 다 하지 않았다.”

패왕은 그렇게 소리쳐 그냥 두면 곧장 가마솥 안으로 뛰어들 것 같은 후공을 멈춰 세운 뒤에 다소 눅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한왕의 세객(說客)으로 과인을 달래러 오지 않았느냐? 분명 얻고자 한 것이 따로 있었을 터인데, 그것도 밝히지 않고 죽음만을 그리 서두르느냐?”

그러자 이제 막 속옷까지 벗으려고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던 후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다가 말했다.

“신은 목숨을 걸고 대왕과 초나라 군사를 문상하러 왔을 뿐 한왕의 세객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이곳을 벗어나 뒷날을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신도 잠시 구차한 목숨을 살려 대왕의 사자가 되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네가 과인의 사자가 되어 주겠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패왕이 알 수 없다는 눈길로 후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후공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받았다.

“한왕의 군막에서 여러 해 식객 노릇을 한 인연이 있으니 대왕을 위해 한왕에게 화평을 권해 보겠습니다. 홍구(鴻溝)를 경계로 하여 서로 화평을 맺고 각기 군사를 돌리기로 하면, 대왕께서는 팽성으로 돌아가시어 재기(再起)를 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홍구를 경계로 한다?”

“그렇습니다. 홍구는 대략 천하를 동서로 나누고 있으니, 그것을 경계로 서쪽 땅은 한왕이 차지하고 동쪽은 대왕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홍구 동쪽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신이나 장이 팽월 경포 등은 어찌 되느냐?”

“그야 당연히 한왕이 불러들여야겠지요. 또 한왕이 약조를 어기더라도 대왕께서 한번 팽성으로 돌아가시기만 하면, 한신이나 팽월 경포 따위는 등에나 쉬파리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한 번에 하나씩 가까이 있는 것부터 쳐 없애시면 오래잖아 홍구 이동(以東)은 쥐죽은 듯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러자 패왕이 다시 의심쩍다는 눈으로 후공을 쳐다보며 꾸짖듯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과인은 이미 외로운 군사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요, 한왕은 느긋이 기다리기만 해도 머지않아 우리 초나라를 쳐부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천하의 절반을 내놓고 과인과 화평하려 들겠느냐?”

“하지만 대왕께는 한왕이 비싼 값을 물고서라도 화평을 맺고 사들이지 않으면 안 될 기화(奇貨)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대왕께서 군중(軍中)에 데리고 계시는 한왕의 부모와 그 처인 여씨(呂氏)입니다.”

그 말에 다시 패왕이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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