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경제 성장과 분배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도 새삼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국민 전체의 후생(厚生)을 증가시키는 기본적인 두 변수인 ‘성장과 분배’는 흔히 함께 잡을 수 없는 두 마리의 토끼로 비유되곤 한다.
분배 정책은 인센티브를 저해해 성장을 둔화시키는 반면, 개인의 능력 향상 극대화에 초점을 두는 성장 정책은 능력의 차이에 따른 소득 격차(빈부 격차)를 야기하므로 성장과 분배는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성장과 분배를 놓고 볼 때 참여정부는 상대적으로 분배에 치중하기 때문에 성장이 희생되어 최근의 경제 불안 문제가 야기됐다고 한쪽에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쪽에선 글로벌화 때문에 국가 간의 소득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후진국은 물론 선진국들의 빈부 격차도 갈수록 커지는 현실에서 분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성장과 분배를 배타적 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성장과 분배의 ‘외부 효과’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현실 경제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경제는 사고파는 행위 등의 무수히 많은 ‘거래’로 형성된다. 경제를 운영하는 데엔 ‘거래 비용’이 든다. 이는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와 정보를 모으고, 흥정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거래 비용이 적으면 거래가 활성화되어 경제가 잘 흘러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미국 국민소득의 45% 정도가 ‘거래’와 관련되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거래 비용은 그 사회의 문화나 신뢰성 및 유대성과 같은 ‘인간관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미국 하버드대의 벤저민 프리드먼 교수의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들의 행복은 자신의 생활수준과 다른 사람과의 상대적 관계로 정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상대적 지위에 집착하기보다는, 훨씬 더 아량과 포용력을 품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 대인 관계의 알력을 조화롭게 극복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중요한 사실이다.
반대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남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이에 따라 좌절감이 점점 더 커질 뿐 아니라 사회관계에서의 알력도 커진다. 이 때문에 거래 비용이 증가해 결국 경제는 시들해지고 둔화된다. 요컨대 경제 성장은 정(正)의 외부 효과를, 침체는 부(負)의 외부 효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배도 외부 효과가 있다. 분배가 악화되면 빈부 간의 알력이 심화되고, 상호 간의 신뢰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거래 비용이 증가하고 경제를 둔화시킨다.
성장과 분배의 외부 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크냐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분배가 사회복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상대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이루어진다고 전제하면 역시 경제 성장이 선결 문제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분배 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분배의 외부 효과’보다는 ‘성장의 외부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매년 8∼9%의 성장을 경험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생활수준의 향상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수년처럼 4∼5%의 성장에 대해 국민의 불평이 많아지고 바람직하지 못한 외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성장의 중요성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분배론보다 성장론을 지지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으로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국민의 정서를 나타내는 것 아닌가.
권오율 호주 국립 그리피스대 석좌교수·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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