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7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25일 03시 08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사마 항양은 군사 1만을 이끌고 나아가 한군(漢軍)을 맞되, 구태여 죽기로 싸울 것은 없다. 한번 창칼을 맞대 보고는 그 엄청난 군세에 놀란 것처럼 되돌아서 달아나면 한군은 겁 없이 뒤쫓을 것이다. 그때 잡힐 듯 잡힐 듯하며 달아나 한군의 본진(本陣)까지 저 들판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라. 그러다가 과인의 복병이 크게 일거든 돌아서서 과인의 뒤를 받치라.”

패왕은 이어 종리매와 환초(桓楚)를 불렀다.

“종리(鍾離) 장군은 날랜 군사 5천을 이끌고 저기 보이는 저 들판 왼쪽 숲 속에 매복하라. 군사들을 단속하여 한군의 본진이 지나가도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과인이 적을 받아치거든 군사들을 휘몰아 적이 물러날 길을 끊어라. 되도록이면 북소리와 함성을 크게 내어 앞서나간 적을 겁먹고 혼란되게 해야 한다.

환초 장군은 날랜 군사 5천을 이끌고 들판 왼쪽 골 깊은 구릉에 숨으시오. 역시 종리 장군처럼 조용히 숨어 있다가 과인이 적의 중군을 들이치거든 뛰쳐나와 적이 돌아갈 길을 끊으시오. 하지만 적의 대군이 사나운 기세로 몰려들면 굳이 막아설 것은 없소. 한쪽으로 비켜섰다가 과인과 합세하여 적을 뒤쫓으며 죽이면 되오.”

그리고 자신은 강동의 자제들만으로 된 1만 군사와 함께 야트막한 산 뒤에 숨어 한군이 거기까지 뒤쫓아와 주기만을 빌었다. 패왕이 숨길 군사는 숨기고 미끼로 내보낼 군사는 내보내 대강 싸울 채비가 갖춰졌을 무렵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한군이 오고 있습니다. 양하를 떨어뜨리고 오는 것 같습니다.”

“군세는 얼마나 되더냐?”

양하가 떨어졌다는데도 패왕이 오히려 반가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정탐을 나갔던 군사는 무엇에 겁을 먹었는지 표정이 밝지 못했다.

“먼빛으로 보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엄청난 대군이었습니다. 누른 덮개를 드리운 수레(黃屋車)로 미루어 한왕이 몸소 이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패왕의 얼굴은 더욱 활짝 펴졌다. 솟구치듯 오추마(烏추馬) 위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하늘이 우리 초나라를 영영 망하게 하지는 않을 모양이로구나. 내 오늘 반드시 유방을 사로잡아 그 흉물스러운 머리를 어깨에서 떼어 놓으리라!”

그리고 시퍼런 철극(鐵戟)을 꼬나든 채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래잖아 동북쪽 하늘 가득 부연 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한왕이 이끈 10만 대군이 위세 좋게 밀려왔다. 벌판 가운데로 나가 있던 항양의 군사가 그런 한군을 맞아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한군 선봉과 부딪히기도 전에 사람과 말이 모두 등을 돌리고 서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선봉을 맡아 달려오던 번쾌가 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뒤쫓아라! 머지않아 홍구(鴻溝)가 앞을 가로막을 터이니 초군은 이미 독안에 든 쥐다.”

그리고 스스로 앞장서 항양의 군사를 뒤쫓기 시작했다. 부장 하나가 그런 번쾌를 말렸다.

“적의 속임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본진을 기다려 나아가시지요.”

하지만 아직도 전날의 승리에 취해 있는 번쾌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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