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는 중국이 기구한 운명으로 20세기 후반 수십 년간 공산사회주의의 길을 걸었지만 중국 경제사는 이 나라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장경제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들은 일찍이 고대중국 시대에 실크로드를 개척해 유럽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상거래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과시했고 400년 전에는 이미 5대양을 건너 6대주 전체에서 장사를 한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러-일전쟁의 종군 기자였던 잭 런던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군을 피해 산속으로 달아났을 때 중국인들은 일본군대에 물건을 팔려고 구름처럼 몰렸다’(조선사람 엿보기)고 화상(華商)의 기질을 전한다.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처럼 상업과 노동을 천히 여기고 경제를 경시해 가난과 함께 살아오다가 1970년대에 비로소 중상주의(重商主義)에 눈을 떠 세계 경제사에 남을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수렁에 빠져 정지했던 중국의 수레바퀴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실용주의에 힘입어 다시 움직이고 가속이 붙은 반면, 요즘 한국의 수레바퀴는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려는 모습이다. 중국이 사회주의를 탈피하려 애쓰고 한국은 그것을 그리워하는 이상한 현상을 외신이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두 나라가 서로 반대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 중 하나는 ‘경쟁’을 보는 시각이다. 사회주의에서 인민은 평등한 생존을 보장받지만 동물원의 짐승처럼 자유가 없다. 반면 자본주의 체제 국민은 정글의 동물처럼 자유롭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살아야 한다.
사회주의에서는 경제적 경쟁과 그 결과로 생기는 이익이 죄악이며 경쟁의 승자인 부르주아지는 인민의 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경쟁이야말로 최악의 인물을 솎아내고 최상의 품질을 이뤄낸다’는 미국 RCA사 초기회장 데이비드 사르노프의 말처럼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이 발전을 위한 핵심이고 시장의 승자들은 선망의 대상이 돼 존경을 받기까지 한다.
지금 중국 정부는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경쟁을 ‘경쟁적’으로 장려하고 여기서 탄생한 부자들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외국기업 유치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경쟁이 지나치지 않은 게 바람직한 정치판에서는 허구한 날 정쟁이 계속되지만 막상 경쟁이 요구되는 경제에는 시장의 승자를 견제해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평등화 정책이 난무한다. 출자총액제한 같은 제도는 시장 승자들에 대한 대표적 견제장치다. 한국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시장이 아닌 국회나 청와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식당 두 군데가 선의의 경쟁으로 음식의 질을 높이기보다 주인 둘이 매일 사이좋게 장기나 두고 있다면 보기에는 좋지만 이런 동네에서 맛있는 음식 먹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둘이 동장 자리라도 놓고 죽기 살기로 다퉈 동네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든다면 주민들은 이중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인데 이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경제에서의 경쟁을 증오하면서 정치에서 무한경쟁을 벌이는 것은 구성원들의 성향에 기인하는 것 같다. 과거 독재정권에 항거하고 가진 자에게 투쟁적이던 사람들이 집권 후에도 당내 정적, 야당, 대기업, 그리고 비판언론과 사나운 싸움을 일삼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바야흐로 선거철을 앞두고 이들은 소수의 ‘경제적 승자’들을 제약해 다수의 호감을 사려는 강자 견제정책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나라가 반시장적으로 유도되고 한국이 더욱 공산주의적 국가로 평가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힘은 국민에게 있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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