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03>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우현(虞縣)의 한 산성에 들어 조참의 예봉을 피한 신은 어렵게 적진을 헤치고 팽성에 이르렀으나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 버린 뒤였습니다. 팽성을 지키던 항타는 관영에게 항복하여 한왕에게로 끌려가고, 그가 거느리던 대군은 흩어져 팽성 부근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은 그중에 2만을 거두어 대왕께로 데리고 왔습니다만 팽성을 구하라는 군명(軍命)을 받들지 못한 죄는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래잖아 진채에 이른 계포가 부끄러워하는 낯빛으로 그렇게 죄를 빌었다. 그러나 패왕은 전과 달리 그런 계포를 별로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끌고 온 3만 군사를 둘러보며 추어주듯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왔으니 됐다. 그대가 이끌고 온 군마는 과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10만 대군을 일컫게 되었으니, 설령 유방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여기서 이겨 그동안 잃은 것을 한꺼번에 모두 되찾도록 하자.”

그리고는 술과 고기를 내어 계포와 그가 이끌고 온 군사들을 위로했다.

한편 한왕 유방과 제왕 한신, 회남왕 경포, 양왕 팽월이 이끄는 30만 대군은 그 무렵 천천히 해하를 에워싸고 있었다. 수양 남쪽에서 네 갈래로 길을 나누어 헤어진 지 스무날 만이었다. 그들 모두가 되도록 세력을 감추고 움직임을 조용히 하여 해하로 다가들다 보니 행군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해하에 이른 것은 한신이 이끈 제나라 군사들이었다. 한왕과 헤어진 한신은 5만 장졸과 함께 가만히 서초를 가로질러 팽성 동쪽에서 공희(孔熙)와 진하(陳賀)를 만났다. 따로 제나라 군사 5만을 이끌고 산동으로 내려오던 한신의 두 부장(部將)이었다. 그들을 거두어 10만 대군으로 부풀어난 한신은 그제야 길을 재촉해 해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동북쪽을 멀리서 에워싸듯 진채를 내린 뒤 한왕의 본진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그 다음에 해하로 온 것은 팽월의 군사들이었다. 한왕과 헤어진 팽월은 곧장 수양(휴陽)으로 올라가 군사 1만을 더 보탠 뒤에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하 서북쪽 50리 되는 곳을 지그시 내려 누르듯 진채를 내린 뒤에, 조용히 군사들을 쉬게 하며 또한 한왕의 본진이 해하에 이르기를 기다렸다.

경포는 회수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대택향(大澤鄕) 동쪽에 진채를 내려 초군이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을 끊는 형국을 취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한나절로 해하에 이를 수 있어 경포 역시 남쪽으로 해하를 에워쌌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거기다가 그동안 구강(九江)에서 급히 모아 온 군사 2만이 더해져 패왕이라 해도 곧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기현((근,기)縣)에 느긋이 머물며 멀리 관중에 있는 소하에게서 군사와 곡식을 끌어와 한층 세력을 키운 한왕 유방이 마침내 해하 서쪽 70리쯤 되는 곳에 이른 것은 한 5년 12월 중순으로 접어들 때였다. 미리 와서 해하 인근의 지세를 샅샅이 살핀 한신이 가만히 한왕에게 사자를 보내 말하였다.

“해하 서북쪽 30리 되는 벌판에 대군을 펼쳐 크게 싸워 볼 만한 땅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리로 본진을 옮기십시오.”

그리고 팽월과 경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벌판으로 군사를 이끌고 오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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