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싸움의 양상이 그렇게 바뀌면서 해하(垓下)에서도 진성(陳城) 아래서와 같은 일이 되풀이 벌어졌다. 패왕의 군사들이 적에게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주지 못하고 집중과 속도부터 잃어버리자 한군의 머릿수가 위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먼저 패퇴하여 스러진 것은 종리매가 이끌던 2만5천의 초군이었다. 패왕의 본진에서 떨어져 나와 공희(孔熙)의 3만 군사에게 발목이 잡힐 때부터 그들은 불길한 예감으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들보다 몇 배가 넘는 한군에 에워싸이게 되자 이제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한군 속에서 반나절이나 분전했으나 끝내 살아서 빠져 나간 것은 겨우 3천 남짓이었다.

계포가 이끈 초군의 처지는 종리매 쪽보다 훨씬 더 험했다. 진하(陳賀)에게 길이 막힐 때부터 계포는 길을 앗아 달아날 궁리만 했으나, 해질 무렵 겨우 에움을 벗어나 헤아려 보니 따르는 군사는 보기(步騎)를 합쳐 2천을 채우지 못했다. 열에 하나도 제대로 살아나오지 못한 셈이었다.

종리매와 계포는 그래도 에움을 벗어나는 대로 패왕을 찾아가려 했다. 초군이 고쳐 쌓은 성곽이나 방벽과 보루로 두른 진채를 찾아가면 다시 패왕과 세력을 합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팽월이 군사를 풀어 길을 막는 바람에 둘 모두 그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뒷날 패왕을 찾아가기로 하고 우선은 한군의 추격을 피해 북쪽으로 멀찌감치 달아났다.

한편 패왕 항우는 종리매와 계포가 남은 군사를 모두 이끌고 합세해 왔을 때 그날의 승리를 자신하였다. 좌우로 나뉘어 한군을 쪼개고 나간 둘이 한군의 기치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그들이 그렇게 속도를 잃고 에움에 빠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수레바퀴 돌 듯 번갈아 덤비는 한나라 장수들을 상대로 불꽃 튀기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줄 몰랐다. 종리매와 계포가 토막 난 한군을 짓밟으며 되돌아와 다시 자신의 뒤를 받쳐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식경(食頃)이 지나도 종리매와 계포가 돌아오지 않고, 그들이 간 쪽에서 몰이꾼의 그것과 같은 불길한 함성만 연방 들려오자 패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진성 아래서의 악몽이 떠오르고, 진여(陳餘) 같은 현사와 용저(龍且) 같은 맹장을 한 싸움으로 잡아 죽인 한신의 병략도 뜬소문이 아니라 무슨 섬뜩한 위협처럼 다가왔다.

“종리매와 계포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아라.”

한바탕 위맹한 공격으로 몰려든 한나라 장수들을 물리친 패왕이 곁에 있는 젊은 부장에게 물었다. 한참 만에 피투성이로 되돌아온 그 부장이 다시 한나라 장수들과의 차륜전(車輪戰)에 빠져 있는 패왕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두 분 장군 모두 한나라의 대군에 에워싸여 있습니다. 에움이 워낙 두꺼워 뚫고 들어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그때껏 휘두르던 무거운 철극을 내던지고 허리에서 보검을 뽑으며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길을 앗아 진채로 돌아간다. 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과인을 따르라!”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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