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23>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많지는 않아도 초군이 배를 구해 남쪽으로 건너는 것을 보자 관영도 급해졌다. 패왕이 이끈 기마대의 사나운 기세에 주춤해 물러선 낭중 기병들을 무섭게 다그쳐 600여 기(騎)의 초군이 펼쳐 둔 작은 반원진을 들이쳤다.

이번에도 패왕이 앞장서 그 공격을 물리쳤다. 피를 뒤집어쓴 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한나라 기병들을 찍어 넘기니 아무리 한군의 머릿수가 많다고 해도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반원진의 전면이 좁아 한의 대군이 힘을 쓰기도 나빴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 강한 활과 쇠뇌를 옮겨 오라.”

마침내 관영이 그렇게 외치며 군사들을 물렸다. 하지만 초군도 손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밀고 밀리는 가운데 죽거나 다쳐 100여 기나 줄어 있었다. 그때 다시 회수 남쪽에서 배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남쪽 나루에서 찾아낸 것인지 배 몇 척이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사공들과 함께 배를 끌고 온 이졸들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남쪽 나루에 무슨 일이 있느냐?”

패왕이 그렇게 묻자 이졸 가운데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구강병(九江兵)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나루를 지키던 군사 수십 명뿐이었으나 그새 연락이 갔는지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 모두가 회수를 건너도 저쪽에 배댈 곳이 없을까 걱정입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살아서 따라온 족제 항장(項壯)을 불러 말했다.

“남쪽 나루에 구강병이 나타났다 한다. 내가 가서 그들을 쫓고 나루를 지키는 한편 큰 배들을 찾아 보내마. 너는 그때까지만 이 포구를 지키며 버텨 보아라.”

그리고는 서른 기를 골라 배를 나누어 타고 회수를 건너갔다.

패왕이 남쪽 나루에 이르렀을 때는 그새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구강병들이 나루에 몰려 있는 100여 기 초나라 기마대를 향해 몰려들고 있을 때였다. 배에서 내린 패왕이 바로 오추마에 뛰어올라 우레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뛰쳐나갔다. 온몸에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피를 함빡 뒤집어쓴 채 불이 철철 흐르는 듯한 두 눈을 부릅뜨며 다가드는 패왕은 그대로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惡鬼) 같았다. 그 뒤를 기세가 오른 초나라 기마 100여 기가 짓밟아 가자 회수 나루를 지키던 구강 수졸(戍卒)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구강병을 멀리 쫓아 버린 패왕은 다시 그 나루를 뒤져 감추어 둔 큰 배 몇 척을 더 찾아냈다. 그때까지 부리던 배들과 함께 좀 더 큰 선단을 이루어 북쪽 나루로 보냈다. 그런데 한식경도 안돼 돌아온 사공과 이졸들이 울며 패왕에게 알렸다.

“한군이 북쪽 나루의 우리 진채에 강한 활과 쇠뇌를 퍼부은 뒤에 돌진하여 남아 있던 우리 군사 대부분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습니다. 저희들은 배를 나루에 대지도 못하고 물위에 떠 있다가, 헤엄을 잘 쳐 강물로 뛰어든 군사 수십 명만 건져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에 패왕은 우미인의 주검조차 제대로 거두어 주지 못하고 해하의 진채를 떠날 때보다 더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다시 군사들이 벌써 저물어 오는 강물 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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