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26>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8일 03시 0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대들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네 방향으로 달려 내려가되 저기 동쪽 산비탈 세 곳에서 나와 만나도록 하자. 첫째 곳에서는 내가 적의 에움을 온전히 흩어버렸음을 보여 줄 것이고, 둘째 곳에서는 적장의 목을 벨 것이며, 셋째 곳에서는 적의 대장기를 베어 넘길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나라 기마대 한 갈래가 패왕을 바라보고 돌진해 왔다. 패왕이 그중에 앞선 한나라 장수 하나를 가리키며 덧붙여 말했다.

“마침 잘됐다. 찾아 나설 판에 제 발로 찾아드는구나. 내가 그대들을 위해 저 장수의 목을 베겠다. 그대들도 모두 두려워 말고 쳐나가라.”

그리고 스물여덟 기를 네 방향으로 뛰쳐나가게 한 뒤 패왕 자신도 말을 박차 산등성이를 달려 내려갔다. 패왕이 벼락같이 소리치며 보검을 휘두르자 맞서 달려오던 한나라 기마대는 바람에 초목이 쓰러지듯 모조리 피를 뿜으며 죽고, 그들을 이끌던 장수도 마침내 패왕에게 목이 떨어졌다.

패왕이 훤하게 뚫린 길로 빠져나가 동쪽 산등성이로 내닫는 걸 보고 한나라 낭중기(郎中騎) 양희(楊喜)가 그 뒤를 쫓았다. 패왕이 무서운 눈길로 양희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이놈! 너도 죽고 싶으냐?”

그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양희와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아울러 놀라 십리나 달아나서야 겨우 멈추었을 정도였다. 이어 산 동쪽에 이른 패왕은 거기 모인 스물여덟 기와 더불어 그곳에 진세를 벌이고 있던 한군 기마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진작 보아둔 한나라 기장(騎將) 하나를 목 벤 뒤 다시 멀찌감치 세워두었던 대장기 하나를 칼로 찍어 넘겼다. 산등성이에서 달려 내려올 때 큰소리친 그대로였다.

그같이 눈부신 패왕의 무용(武勇)과 기백을 두 눈으로 본 초나라 기병 스물여덟 기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로 패왕과 그들이 고단한 처지에서 온전히 풀려난 것은 아니었다. 패왕의 무서운 기세에 밀려 주춤했던 한군이 다시 대오를 수습해 잠시 뚫렸던 포위망을 새로 얽었다. 그리고 패왕이 있는 곳을 찾아 두껍게 에워싼 뒤 세 갈래 방향에서 대군으로 밀어붙였다.

“이제 이곳을 뚫고 나간다. 모두 나를 따르라!”

패왕이 보검을 높이 쳐들고 그렇게 외치더니 세 갈래 한군 가운데 한 갈래를 겨냥해 오추마를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새롭게 고양된 초나라 기병 스물여덟 기가 한 덩어리로 뭉쳐 따라갔다.

한나라 도위(都尉) 하나가 멋모르고 패왕을 막아섰다가 어디가 어떻게 베었는지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다. 이어 재수 없게 패왕의 길목을 막아선 꼴이 된 한나라 기병 100여 명이 가을바람에 잎 지듯 피를 뿜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겹겹이 에워싼 한군 사이로 한 줄기 길이 열리고, 그렇게 열린 길로 한 덩어리가 된 초군 스물여덟 기가 거센 바람처럼 치고 나갔다.

이제 더는 뒤쫓는 적이 없다 싶은 곳에 이르자 패왕은 말을 세우고 뒤따라오는 기병들을 모아보았다. 스물여덟 기 중에 단 두 기만 보이지 않았다. 패왕이 그들 살아남은 스물여섯 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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