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2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9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어떠냐?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 이리 된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겠느냐?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과연 대왕의 말씀과 같사옵니다. 대왕은 하늘이 내려 보낸 전신(戰神)이십니다.”

그 스물여섯 기병이 모두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엎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패왕도 통쾌한 듯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다가 문득 웃음을 거두고 그들을 재촉했다.

“모두 말에 올라라. 어서 나루를 찾아 강수(江水=장강)를 건너야 한다.”

그때만 해도 패왕은 되살아난 재기의 의욕으로 고양되어 있었다. 재기의 발판이 될 강동에 소홀했음을 스스로 뉘우치며 강동 사람들에게 지난 잘못을 빌 여유까지 보였다.

“지난날 유방이 그토록 몰리면서도 왜 그리 관중(關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이제는 알 만도 하다. 천하를 경영하려는 자는 언제나 근본을 돌아보고 튼튼히 해 두어야 한다. 강동은 나의 근본이었다. 그런데 한번 떠나오고 8년에 가깝도록 한 번도 강동을 돌아보지 않았다. 팽성에 자리 잡고 안겨 오지 않는 중원만을 노려보며 헛되이 분주하였으니, 이제 와서 강동으로 돌아가기 실로 부끄럽다.”

패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까지 붉혔다.

동성(東城)에서 눈부신 무용(武勇)으로 한군의 에움을 떨쳐버린 패왕과 그를 따르는 스물여섯 기가 한 식경을 달려 이른 곳은 오강(烏江)이라는 나루[포]였다. 오강은 원래 정(亭)이었으나 진(晉)나라 초기에는 현(縣)으로 되고, 오강나루[烏江浦]는 나중에 황률구(黃律口)로 불리기도 했다. 거기서 강수만 건너면 바로 강동 땅이었다.

오강도 음릉처럼 구강(九江)에 속한 땅이었으나, 사는 사람은 모두가 패왕을 속여 늪지를 헤매게 한 음릉의 농부와 같지는 않았다. 특히 오강정의 정장(亭長)은 패왕이 한군에 쫓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배 한 척까지 구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패왕이 스물여섯 기를 이끌고 배가 대어져 있는 강 언덕에 이르자 정장이 반겨 맞으며 말하였다.

“강동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으로 몇 천 리요, 백성들의 머릿수 또한 수십만에 이르니, 넉넉히 임금 노릇을 할 만한 땅입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얼른 배에 오르시어 물을 건너십시오. 지금은 부근에서는 신(臣)에게만 배가 있어, 한군이 이곳에 이른다 해도 물을 건너 뒤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이 패왕의 희비(喜悲)와 애락(哀樂)의 변환이요, 거기서 비롯되는 분발과 위축의 교차였다. 정장의 충심에 세찬 감동으로 얼굴이 굳어졌던 것도 잠시,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늘이 이미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구차하게 물을 건너 무얼 하겠는가? 지난날 나는 준총(駿2) 같은 강동의 자제 8천 명과 이 물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이제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설령 강동의 부형(父兄)들이 나를 가엾게 여겨 다시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낯가죽으로 그들을 마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두번 다시 그 일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적(籍)은 일생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윽하게 오강 정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추마에서 뛰어내리더니 그 말고삐를 내밀며 당부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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