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A~Z]<4>논지 설정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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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논지 설정, 당락 가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논제를 파악하고 제시문을 분석하는 작업까지 끝냈습니다. 논술 답안 작성에서 읽기 부분을 끝낸 셈이지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원고지에 글을 써 나가야 할까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용감하긴 하지만 현명하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좀 더 차분해야 할 시점입니다. 원고지에 빨리 펜을 갖다 댄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구상해야 할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논술은 남을 설득하는 글입니다. 면밀하게 계획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절대로 남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무엇부터 구상해야 할까요? 먼저 논지를 설정해야 합니다. 논지는 논의할 문제(논점)에 대하여 자신이 펼칠 핵심 주장을 말합니다. 결국 논지를 설정하는 것은 자신이 주장할 논의의 결론을 정하는 것이고, 더 크게는 논의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얼 그리 장황하게 말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친구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주장할 내용이야 머릿속에 분명히 들어 있으니 그것을 그냥 척 펼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맞는 얘기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글을 쓸 때 그렇게 대범하게 접근하면 됩니다. 대입 논술도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입 논술 답안은 주어진 시간 안에 주어진 분량에 맞추어 써야 하는 글이기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 중에 글을 구상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대입 논술 답안입니다. 다 쓰고 난 다음에 고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글을 구상할 때 가장 뼈대가 되는 논지에 대하여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 보자는 것입니다. 글을 쓰다가 중간에 논지를 바꿀 여유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자는 것이죠.

논지를 설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선택 가능한 입장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빠짐없이 고려해 보자는 것이지요. 겉보기에는 둘 중 하나인 것 같아도 실제로는 훨씬 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 쟁점을 예로 들어 봅시다. “대학 교육에서 교양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가, 직능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는가?” 언뜻 생각하면 교양 교육 강화와 직능 교육 강화라는 두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쪽을 균형 있게 시행하자는 입장도 가능합니다. 또한 같이 교양 교육 강화를 주장하더라도 어느 정도 강화할 것인가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쟁점은 대학 교육에서 교양 교육과 직능 교육을 어느 정도 비율로 시행해야 하는 것이 적절한지 묻는 물음이 되어, 그 비율을 놓고 굉장히 다양한 논지가 제시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찬반 논의를 하는 경우에도 단순한 찬성과 반대에 그쳐서는 안 될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찬성 혹은 반대할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적극 찬성과 조건부 찬성, 적극 반대와 조건부 반대 정도라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근거를 제시할 경우에도 만일 적극 찬성의 입장을 택했다면 우선 왜 반대가 아니라 찬성인지의 논거도 제시해야 하지만, 나아가 왜 찬성 중에도 조건부 찬성이 아니라 적극 찬성인지에 대한 논거도 제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찬반 논의조차도 섬세하게 접근할 경우, 단순히 둘 중 하나만 택할 상황이 아니라면 다른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다양한 입장을 검토해서 논지를 정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섬세하게 논지를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섬세하게 논지를 정하지 않고 글을 쓰게 되면 자칫 논지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 입장이라는 정도만 대충 정해 놓고 글을 쓰다 보면, 시작할 때에는 ‘적극 반대’로 출발했다가 반론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점점 입장이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조건부 반대’로 끝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과연 이렇게 논지가 흔들리는 글을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처음부터 자신의 논지를 섬세하게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EBS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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