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부 노사모와 여당 의원 그리고 대통령의 전직 측근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면서 정권의 걸림돌을 자임하고 나섰다. “반미면 어떠냐”던 노 대통령의 표변이 선거 때의 받침돌들을 자극한 모양이다.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인지, 아니면 국가를 운영하면서 혹은 국가원수로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얻은 지혜의 영향으로 변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후보시절 다중에 영합하는 논리를 주장하던 언행과 달라진 것이 (혹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 본질적 변화인지, 아니면 겉만 변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단지 지금 분명한 것은 최소한 한미 FTA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의 선택은 옳다는 점이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대국 미국조차 보호무역 정책으로 나라경제를 후퇴시킨 사례가 많았다. 1980년대 후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고 일본에 대해 ‘대미 수출 자율규제’를 유도한 결과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값이 대당 3000달러까지 폭등해 미국 국민은 끔찍한 손해를 보아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철강근로자들의 직장을 유지해 주려고 미 행정부가 철강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을 때는 이 제품을 원료로 하는 미국 내 전 산업의 경쟁력이 동반 약화하기도 했다. 보호무역의 결과는 그렇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코미디 같은 보호무역 사례는 1980년대 비닐하우스를 전기로 난방하고 바나나를 재배케 한 일이다. 수입규제로 우리 국민은 제주산만 사 먹어야 했는데 당시 떫은맛의 바나나 1개 값이 요즘 슈퍼에서 달콤한 수입 바나나를 한 다발도 더 살 수 있는 3000원까지 했다. 더구나 당시 농업용 전기는 원가 이하로 공급됐기 때문에 전기료 차액은 전력 수용가인 국민 모두가 대신 내줘야 했다. 개방이 국민경제를 위해 왜 필요한지 말해 주는 사례다.
한덕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개방해서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쇄국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한 말은 현대 교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FTA를 거론할 때 핵심은 그것이 국가경제에 득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다. 협상 대상국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논쟁의 소재도 되지 않을뿐더러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다. 양국 간 관세가 없어졌을 때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못할 만큼 우리 정부 관리들이 어리석단 말인가. 고시는 선거보다 변별력이 높다. 여론에만 매달리는 정치인들이나, 목소리만 높은 일부 시민단체 인사들보다 관리들은 대개 더 유능하고 책임감도 있다. 만에 하나 일각의 극렬한 반대로 FTA가 결렬돼 국가경제가 손해를 본다면 반대론자들이 그 손실을 국민에게 배상해 줄 것인가. 상대적으로 더 책임감 강한 관리들의 판단을 존중하자는 이유는 그것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도 한미 FTA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져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하는 것이 반대 세력들의 아우성 속에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는데 노 대통령도 이제 그 외줄의 3분의 2 지점을 지나고 있다. 비판여론으로 줄이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며 주저앉아 관객의 가슴을 서늘케 했던 그였지만 이번 FTA 결정은 관객의 아우성을 잠재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 북한에 대해서도,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국내 비판여론에 대해서도 이런 변신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나머지 3분의 1 외줄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늦은 감도 있지만 이 정도 잔여 임기라면 지금까지의 과오를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은 노 대통령이 무사히 외줄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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