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계열사 경영진에 목표를 주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다가 최종 실적으로 평가한다. 삼성 계열사 사장 중에는 1년 동안 이건희 회장을 몇 번 만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스타가 많다고 해서 이 회장의 빛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스타에 둘러싸인 왕회장은 더 광채가 난다.
현대차그룹에선 정몽구 회장이 차량 미등(尾燈) 디자인까지 챙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쪽이 경영의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기업의 모든 것은 실적과 주가가 말한다. 업종에 따른 특성도 있다. 저품질 저가차의 대명사이던 ‘현다이’가 미국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10년, 10만 마일’ 무상수리 보장이었다. 강력한 리더십이 없으면 이렇게 위험이 따르는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경영 공백이 생기면 리더십 부재와 의사결정 지연에 따른 혼란이 예상된다고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현대차가 전문경영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지 않고 1인 체제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의 비교를 더 해 보자. 삼성의 승계 예정자인 이재용(38) 씨는 삼성전자 상무이고 현대차의 정의선(36) 씨는 기아자동차 사장이다. 현대차의 조급증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지 않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외과 수술’을 통해서라도 비자금을 이용한 편법 승계 그리고 불투명 경영의 관행과 단절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은 한 단계를 뛰어넘게 된다.
현대차는 한국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조 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종업원 임금 주고 세금 내고, 연구개발비 떼놓고서도 이익이 남으면 소액이라도 하는 것이 값지다. 검찰 수사를 받는 기업이 허겁지겁 기부금을 내는 모습은 1980년 신군부 치하의 재산 강제헌납을 연상케 한다.
비정부기구(NGO) 파운데이션 센터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기부 규모는 월마트가 2003년 한 해 동안 1억1980만 달러로 최고액을 기록했다. 포드자동차는 3위로 7792만 달러를 기부했다. 현대차가 약속한 기부금은 포드차의 10배 이상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매출액 규모와 판매대수에서 1등은 아니지만 순이익 규모는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를 합친 것보다 많다. 엔고와 고유가의 악조건에서도 성과를 내는 것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를 계속 늘려 기술과 생산의 우위를 확보한 덕분이다.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충하고 연구개발비를 늘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공헌은 그 다음 문제다. 현대차가 잘못되면 공적자금이 사회공헌기금의 수십 배가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현대차는 부품업체가 많아 삼성전자보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동차에는 2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 업체를 원줄기라고 하면 7000여 개의 부품업체는 곁가지에 해당한다. 원줄기가 꺾이면 곁가지도 시들어 버린다. 정부는 대기업들에 사회공헌 못지않게 상생(相生)경영을 압박하고 있지만 자동차 가격에서 부품 값이 70%를 차지한다. 현대차가 해외에서 도요타와 피 말리는 가격경쟁을 벌이는 판에 부품업체들이 무풍지대에 안주할 수는 없다.
검찰 수사가 현대차에 보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정상명 검찰의 고뇌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제정의 실현과 경제 충격의 최소화는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투 트랙(two track)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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