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과 그레이에 원색으로 포인트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중성적이고 차분한 컬러가 대세. 많은 디자이너가 블랙 의상을 선보였다. 홍승완과 김서룡의 남성복 모델은 블랙 재킷에 블랙 셔츠, 넥타이까지 블랙이었다. 이에 맞춰 패션의 공식 중 하나인 ‘블랙 앤드 화이트’ 룩이 등장했다. 컬렉션마다 화제를 불러오는 지춘희의 무대는 칼라와 소매에 화이트 모피가 달린 스커트 슈트와 화이트 원피스 위에 입은 블랙의 코트와 모자 등이 오프닝을 장식했다.
가을 겨울의 패션에는 컬러가 톤다운되는 경향이 있으나 이번 무대에서는 블랙과 그레이 등 무채색에 선명한 레드나 다크 블루로 강렬한 포인트를 준 의상이 많아졌다. 대부분의 의상이 블랙이던 ‘비터 앤 스위트’의 이문희와 박소영 김은희 염미 등 3명의 디자이너가 이끄는 ‘애브노말’의 쇼에서는 블루 레깅스와 진한 레드 드레스가 블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로맨티시즘은 절제되고 미니멀리즘은 변화한다
이번 봄여름을 장식하고 있는 러플과 레이스 장식의 로맨틱 무드는 한결 안정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장 로맨틱했던 아이템은 스커트와 원피스. 단순한 라인의 스커트보다 봉긋한 튤립 모양이거나 프릴이 달린 것이 많았고 안에 페티코트(부풀린 속치마)를 받쳐 입은 듯 볼륨감을 풍성하게 한 의상이 많았다. 레깅스와 매치된 송자인의 레이스 스커트와 시폰 원피스는 지금 입어도 될 것 같았고 강기옥은 섬세한 자수 장식의 청 원피스나 청바지를 통해 데님이 얼마나 로맨틱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보여 줬다. 박윤수는 남성복 같은 재킷에 꽃무늬와 리본 장식, 칼라의 변형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가미했다.
미니멀리즘은 심심하지 않게 디테일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서울컬렉션의 첫 무대였던 디자이너 진태옥의 쇼는 미니멀리즘의 극치. ‘바가지 머리’를 하고 불투명 스타킹에 얌전한 메리제인 슈즈를 신은 모델들이 입은 넉넉한 코트와 스커트, 슈트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지춘희의 코트도 큼직한 칼라에 단추 몇 개만으로 고급스러움을 자아냈다. 강희숙은 강한 느낌의 심플한 팬츠 슈트에 리본 장식이나 특이한 모양의 브로치로 ‘모던 소프트’라는 주제를 구현해 냈다.
○ 더 가늘게, 더 길게
많은 여성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는 ‘공포의 유행’ 스키니 팬츠의 위력도 가시지 않았다. 가끔 와이드 팬츠가 눈에 띄긴 했으나 대세는 스키니였다. 청바지뿐 아니라 정장풍의 바지도 스키니 라인으로 표현됐다. 레깅스도 쇼마다 나왔다. 박춘무의 무대에서 많이 나온 대로 레깅스를 발꿈치를 지나 발등이 약간 덮이도록 끌어내려 신는 방식, 반바지나 스커트에 흔히 ‘토시’라고 하는 레그워머를 신는 스타일이 유행할 전망이다. 손정완이 제안한 대로 소매를 부풀리거나 주름으로 볼륨감을 살린 80년대 스타일 상의에 스키니 팬츠나 레깅스를 매치해도 좋을 듯.
가늘고 긴 실루엣은 남성복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의 튼실한 허벅지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극단적인 스키니 팬츠가 쏟아져 나왔다. 스키니 팬츠까지는 아니어도 허벅지에 꼭 맞으면서 일자로 떨어지는 폭 좁은 스트레이트 팬츠 하나쯤은 있어야 할 듯. 정욱준 쇼의 호리호리한 꽃미남 모델들은 끊어질 듯 가는 다리에 스키니 팬츠를 입었으며 재킷의 칼라도 얇고 좁았다. 슬림 넥타이는 셔츠의 단추선을 겨우 가릴 정도.
남성의 스키니 팬츠도 풍성한 니트 스웨터나 카디건, 코트 아래서 역삼각형의 실루엣을 만들어내 여성복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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