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관습 속에서는 소규모 자영업자부터 대기업 총수에 이르기까지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시키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고, 이는 친족과 혈연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결과인 동시에 오너 경영체제가 가져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우리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한 오너 경영체제의 유지에 대해서 유달리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업이 단순히 개인 또는 그 가족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경제·사회적인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자가 수많은 종업원을 고용해 밤잠을 설쳐 가면서 이룬 기업이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업주는 합법적인 경영승계를 통해 기업주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바로 합법과 불법 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현재 한국의 상속·증여세는 최고세율이 50%로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식을 상속할 경우 20∼30%의 할증까지 붙는다. 기업이 번창할수록 자본 투입이 많아지고, 부채가 늘어나며, 창업주 개인이 가진 주식 비율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율의 상속세를 모두 납부할 경우, 오너 경영체제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며 기업가 정신도 급격히 냉각될 수밖에 없다.
경영권이 불안해지면 투자, 채용 등 중요 경영 의사 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탈세하거나, 별도의 자금을 마련하는 등 편법이나 불법을 동원할 유인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범법자를 양산해 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들어 미국, 스웨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많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상속세를 폐지한 이유를 우리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는 합법적 기업의 승계를 원활히 하여 오너 경영체제를 보장해 주는 것이 상속세를 거두어 국가가 직접 재분배하는 것보다 경제 활력 증진과 국민 전체의 소득 향상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는 상속세를 폐지하는 대신 피상속인의 자산 보유기간 중에 발생한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자본이득세 제도를 도입하여 상속세를 대체하였고, 미국의 경우 상속 시점에는 어떠한 과세도 하지 않는 대신, 상속인이 그 재산을 처분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를 과세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오너 경영을 지원함과 동시에 부의 세습을 막고 소득분배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상속세는 존치하되 오너 경영을 지원하기 위해서 기업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질 경우 상속액의 40%를 기본 공제하고, 나머지 금액에 대한 상속세도 10년 동안 납부를 이연시켜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도 기업인들을 부도덕한 범법자로 만드는 환경에서는 탈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부담은 결국 국가와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기업인들이 부도덕한 범법자의 멍에를 쓸 수밖에 없다면 우리 경제의 장밋빛 미래는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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