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없이 글을 쓰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글의 흐름이 뒤죽박죽되기 쉽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그리고 타당하지 않은 내용이 논거로 들어가기도 하고,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이 빠지기도 합니다. 앞뒤 순서가 뒤바뀌어 체계가 흐뜨러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막고, 앞뒤 순서를 지켜 논리적이고 질서 있는 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전체와 부분, 그리고 부분 상호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요가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에 글을 써야 하는 대입 논술에서 개요 작성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은 대입 논술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입니다. 대입 논술처럼 개요 작성이 가장 중요한 글쓰기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글을 쓸 때는 맥락(context)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맥락을 이루는 첫째 요소는 바로 독자입니다. 특히 논술처럼 설득을 겨냥하는 글쓰기는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야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글을 작성하는 상황입니다. 대입 논술의 상황은 어떠할까요? 두세 시간 남짓한 시간에 시험 현장에서 글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대입 논술은 현장성이 강한 글쓰기입니다. 글을 쓰고 난 뒤에 검토하고 돌아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학에서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경우와는 맥락이 다릅니다. 보고서나 논문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지요. 그래서 초고를 쓴 다음 누가 더 면밀하게 검토하느냐에 따라서 글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에서의 학술적 글쓰기는 ‘반성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토라는 작업이 글쓰기의 필수적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입 논술은 보고서나 논문처럼 논증적 글을 쓰는 것이지만, 글을 쓰는 과정은 판이하기 다릅니다. 현장성이 강한 대입 논술은 라이브 공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녹화와는 달리 ‘NG’를 낼 수가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대입 실전에서는 한 번 NG를 내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끝내야 하는 글쓰기에서는 어떤 다른 맥락보다 글을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대입 논술은 ‘구성적 글쓰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요 작성은 바로 글을 만들어 내는 과정 중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면밀한 개요 작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대입 논술 문제가 150자에서 400자 정도의 짧은 답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짧은 글쓰기에 개요가 필요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개요 작성을 잘못 이해하고 하는 말입니다. 개요를 짤 때, 문단 배치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각 문단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더 중요합니다. 각 문단이 빈틈없이 짜여져 있을 때 독자인 채점위원은 글이 논리적이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한 문단을 쓰더라도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하면서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단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바로 개요 작성이 바로 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요 짜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편리하도록, 실제 도움이 되도록 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개요 없이는 논술 없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논술 시험에서 모험을 즐기고 싶은 사람만 개요 없이 논술 답안을 작성하기 바랍니다.
성균관대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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