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4강 쾌거를 이룬 것처럼 독일도 4강에 올랐다.
홈 어드밴티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국민의 열렬한 응원 속에 선수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지형, 기후, 음식뿐 아니라 생체시간도 맞춰져 있다.
한국은 2002년 대회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분출됐다. 전국을 가득 채운 ‘붉은 악마’는 축구팬만은 아니었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재발견한 것이다. 활기차고 신들린 듯 뛰는 태극전사는 한국의 새 목표를 보여 줬다. 일제강점기 후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됐고 한국 경제는 급속히 발전했다. 하지만 민족의 자부심을 끌어낸 것은 축구였다.
독일은 한국과는 다르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이며 1954, 74, 90년 이미 세 차례나 월드컵 정상을 차지했다.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거대해진 독일은 실업과 통일 비용 때문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1990년 프란츠 베켄바우어 당시 감독은 통일이 되면 독일축구는 더 강해질 것이라 말했지만 오히려 이후 쇠퇴했다. 2002년 준우승이 진짜 실력은 아니었다.
2006년 독일은 달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팀을 바꿔 놓았다.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팀 컬러는 희망을 잃었던 독일인의 상상력을 끌어들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독일의 거스 히딩크였다. 그는 젊은 선수들이 왜 스스로를 넘어 더 발전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열정과 에너지를 요구했다. 히딩크와 클린스만 감독은 ‘할 수 있다’는 철학을 심어준 것이다.
매번 수만 명의 팬이 광장의 대형 스크린 앞으로 모였다. 수십 개국에서 온 축구팬과 여행자들이 함께 즐겼다.
VIP석에서 봤던 많은 경기보다도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본 독일-에콰도르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70만 명이 모였지만 증오도 인종도 피부색과 신념에 따른 분열도 없었다.
대회 슬로건 ‘친구를 만드는 시간’은 과거사 때문에 60년 이상 억눌려 왔던 독일인의 마음을 뜻했다. 축구를 통해 독일인은 마침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민족주의’는 금기사항이었다. 하지만 이제 민족주의는 새로운 의미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과제는 이 깨달음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랍 휴스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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