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인증, 지정 과정의 의혹=문화관광부는 지난해 3월 31일 22개의 경품용 상품권을 인증, 공고했으나 검증심사 결과 22개 업체가 모두 허위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업체는 법인통장과 회계처리부실, 자기자본비율 취약, 가맹점 확보 미비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모두 인증 통보를 받았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문화부는 지난해 6월 30일 22개 상품권의 인증을 취소한 뒤 7월 상품권 지정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허가제인 인증제가 수시 등록이 가능한 지정제로 바뀐 것. 그러나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박찬숙(한나라당) 의원은 문화부에서 새로 지정한 상품권 발행업체 19곳 중 11곳은 앞서 허위 자료 제출로 인증이 취소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허위사실이 밝혀지면 2년간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규정이, 제도가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바뀌는 와중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국감에서 게임산업개발원 우종식 원장은 “절차의 미흡은 인정한다”면서도 “잘못된 행정행위이지만 현재 전면적으로 취소하면 시장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 의원은 또 올해 7월 문화관광위 불법사행성게임근절 및 게임산업진흥대책소위원회에서 “특정 업체에 상품권 발행 권한을 주기 위해 지정제로 바뀌었다는 의혹이 있다”며 “시중에서는 이 과정에서 정치자금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간다”고 주장했다.
▽상품권 과다발행 조장=게임산업개발원은 지난해 9월 기준 9개 업체가 상품권을 하루 1000만 장씩 발행했는데도 물량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쇄도해 상품권 지정업체를 19개로 늘렸다.
상품권의 만성적 물량 부족 사태는 오락실에서 법정 당첨 한도액인 2만 원을 어기고 기억장치를 통해 연속적으로 수십만∼수백만 원의 점수(상품권)를 얻도록 게임기를 불법 조작한 데서 연유했다.
17일 문화부 주최로 열린 경품용 상품권제 폐지 공청회에서 김창배(게임멀티미디어학과) 우송대 교수는 “게임기 불법 개조 변조를 통한 상품권 과다 배출과 이로 인한 환전이 사행성 게임을 둘러싼 비정상적 수익구조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일부 오락실에서 승률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104% 선까지 조작하는 까닭도 상품권 회전율을 높여 환전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 훨씬 많은 수익을 빠르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산업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된 경품용 상품권 환전 수수료만 1조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도대로 사용된 뒤 회수된 상품권(1800억 원 추정)의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인증제가 지정제로 바뀐 것도 정책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상환실적이 있는 가맹점 100개 이상 보유’ 등 누구든 지정기관이 요구하는 요건만 충족하면 수시로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노웅래(열린우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 문화상품권 업체는 가맹점 수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수백 개 체인점을 가진 모 안경점과 계약을 한 뒤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산업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상품권 지정제가 도입된 뒤 올해 7월 말까지 발행된 상품권은 모두 60억 장에 30조 원어치. 이는 올해 국방예산(23조 원)을 초과하는 규모다. 또 전체 발행 상품권의 98.5%가 현금 환전용으로 쓰이고 있으며 가맹점에서 상환하는 것은 전체 발행량의 1.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품용 상품권 최초 허가 경위=사행성 조장의 주범인 경품용 상품권의 첫 허가가 어떻게 났는지도 의문이다. 게임장에 경품용 상품권이 도입된 것은 2002년 2월. 당시 주무 국장인 문화산업국장은 유진룡 전 차관이다.
경품용 상품권은 경품 취급 게임장에서 금반지 등 귀금속류나 경품교환용 티켓을 지급해 문제가 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게임장의 사행성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됐다. 도입 당시 1만960개였던 게임장은 지난해 1만4998개로 37% 증가했다.
남궁진 전 문화부 장관은 “현금 거래와 사행성을 막기 위해 상품권을 도입했는데 너무 많이 발행되면서 결국 악용 대상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게임 불허되자 업자가 협박-난동…단속권 없어 사후관리 유명무실
사행성 성인게임 ‘바다이야기’의 심사를 맡았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그 기능과 권한에 있어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형식적인 심사로 사행성 짙은 성인게임기를 무더기로 허가한 데다 심사 통과 이후의 사후 관리마저 부실해 “병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영등위의 등급분류기준 강화 방침에 대해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제동을 건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총리실 제동 논란=당초 문화관광부는 성인게임기의 사행성 논란이 확산되자 2002∼2004년 모두 7차례에 걸쳐 게임물 등급분류기준을 강화해 달라고 영등위에 공문을 보냈다. 당초 영등위가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국무조정실이 영등위의 등급분류기준 세부 개정안을 반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부가 사행성 논란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요구한 규제강화 방안에 대해 왜 총괄조정기구인 국무조정실에서 관여하게 됐는지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문화부와 국무조정실 사이에 어떠한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영등위가 국무조정실에 규제심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시 국무조정실에 근무했던 문화부 최대용 예술국장은 반려 이유에 대해 “영등위는 주로 영상물의 음란성 선정성을 심사하는 곳인데 게임을 영상물로 볼 수 있는지, 또 사행성을 규제할 만한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가 분명치 않았다”고 말했다.
▽로비, 협박, 위원 자질 시비=검찰은 20일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게임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등위 관계자가 등급분류심사 청탁과 관련해 1000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2004년 12월에는 아케이드게임소위 위원이었던 조모 씨가 업자로부터 돈을 받아 구속되면서 영등위원장과 소위 위원 3명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도 했다.
게임업계에 밝은 한 인사는 “전에도 일부 업체가 돈이 게임기로 유입되는 바다이야기 방식을 채택해 심사를 받았으나 이런 방식은 프로그램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거부됐다”며 “바다이야기가 어떻게 통과됐는지 업계에서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입장에서는 투자비용 회수 등 엄청난 이권이 걸린 심사와 등급분류 과정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성인게임기 ‘황금성’ 대표 이모 씨는 올해 2월 자신들이 신청한 ‘극락조’ 게임이 ‘이용 불가’ 판정을 받자 영등위 사무실에서 아케이드게임소위 이모 위원을 감금하고 “창자를 꺼내 목 졸라 죽일까”라는 등 폭언과 협박까지 했다.
▽사후 관리도 유명무실=또 다른 문제점은 ‘사후 관리’다. 영등위 산하에는 심사에서 통과한 영상물이나 게임 등이 심의 규정대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사후관리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이 위원회 산하 사후관리대책반(단속반)의 인원은 8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업소의 허가 취소나 인신 구속의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본의 국가공안위원회처럼 허가와 단속권을 함께 가진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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