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위는 경품용 상품권을 유통시킨 문화부에 근원적 책임이 있음을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고, 문화부는 사행성 게임을 허가하고 등급분류기준 강화를 미룬 영등위에 화살을 돌리는 양상이다.
▽‘상품권 폐지 건의-문화부 묵살’=본보가 21일 단독 입수한 ‘게임제공업용 게임물 세부규정 제정(안) 관련 문화부와의 전언통신문’에 따르면 영등위는 2004년 11월 경품용 상품권 폐지를 수차례 건의했으나 문화부가 이를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영등위가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에 사행성 성인게임 단속을 위한 등급분류기준 세부규정 제정안의 심사를 요청했으나 10월 28일 규개위가 규제 내용이 과도하다며 제정안을 반려 조치한 직후에 있었던 일이다.
이 전언통신문은 영등위 게임영상부 최모 씨가 11월 10일 문화부 게임음반과 윤모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약 한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 이는 상품권 인증제가 도입(2004년 12월 30일)되기 이전, 딱지 상품권이 횡행하던 때 오간 대화다.
다음은 전언통신문에 기록된 대화의 골자다.
▽윤=어제 MBC ‘PD수첩’에 스크린 경마게임이 방영됐는데 도박화의 근본 원인을 상품권 제공으로 몰아가던데, 권장희 위원(당시 영등위 아케이드게임소위 의장)도 그렇게 얘기하던데 이 사항이 맞는 얘기라고 생각합니까?
▽최=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락실에서 상품권이 환전돼 게임을 지속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오락실의 도박장화를 가져왔고, 이것이 게임중독이라는 사회병리 현상을 유발시켰다는 부분은 일정 부분 사실이라 판단됩니다. 또한 이전에 오락실에서 상품권 제공의 폐해와 관련한 실태조사 결과를 귀 부에 송부한 적도 있고, 영등위에서 의결된 상품권 폐지 건의에 관한 내용도 송부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권 씨는 21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2004년 10월경 상품권 폐지를 문화부에 건의하는 문서를 작성해 소위원회 위원들의 개별 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TV에서는 스크린 경마게임의 문제를 상품권 문제로 몰고 갔는데, 상품권을 건전한 문화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폐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볼 때는 오히려 영등위 등급 분류가 베팅이나 배당에 대한 한도를 너무 높여 게임중독을 유발하고 이것이 사회적 문제점으로 이어졌다고 판단되는데요….
▽최=베팅으로 인한 고배당의 당첨으로 게임을 진행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높은 점수를 획득한다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확률적으로 희박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 사이버머니인 게임 점수로 계속 게임을 진행한다는 것이 사행성을 부추기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오히려 국민에게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게임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서 2002년부터 정부가 시행한 상품권이 본래 취지와 무관하게 환전 수단으로 작용하여 게임의 중독성을 가져왔고 건전한 게임기가 아닌 사행기구를 통한 오락실의 하우스화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등급분류 개선 요청-영등위 무시’=그러나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에 따르면 영등위는 2002년 7월 문화부가 사행성 게임에 대한 등급분류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처음 요청한 지 2년 2개월여 만인 2004년 9월 초에야 세부 개정안을 만들어 국무조정실에 심의를 상정한 것으로 나타나 ‘오십보백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 의원이 21일 공개한 당시 공문서에 따르면 문화부는 2002년 3차례, 그 다음 해 4차례에 걸쳐 개선안 마련을 요구했다. 2004년 2월에도 문화부는 영등위에 ‘수차례에 걸쳐 등급분류기준 개선안을 마련하도록 요청했으나 1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개선안 마련을 재차 촉구했다.
이에 영등위는 회신을 통해 ‘5월 30일에 개정안의 규제개혁위원회 상정 및 규제 심사통과 후 공포 시행하겠다’는 등의 일정을 문화부에 통보했다. 이 개정안은 규개위에서 2차례 반려된 뒤 12월에야 심의를 통과했으며 12월 31일 문화부 고시에 반영돼 시행됐다.
한편 김명곤 문화부 장관은 21일 국회에 출석해 “문화부가 2004년 2∼5월 다섯 차례에 걸쳐 영등위에 공문을 보내 사행성 성인게임기에 대해 재심의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바다이야기의 등급분류가 이뤄진 같은 해 12월 이전의 일로 바다이야기와 무관하다”며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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