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발행 5, 6곳 사실상 부도상황”

  • 입력 200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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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뜬다” 싹 치워진 게임기 공장300평이 넘는 대전의 한 사행성 성인게임기 제조업체 공장이 텅 비어 있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게임기에 대한 검경의 일제 단속이 시작되자 이 업체 직원들은 23일 아침 일찍 게임기를 모두 차에 싣고 행방을 감췄다. 대전=전영한 기자
“단속 뜬다” 싹 치워진 게임기 공장
300평이 넘는 대전의 한 사행성 성인게임기 제조업체 공장이 텅 비어 있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성인게임기에 대한 검경의 일제 단속이 시작되자 이 업체 직원들은 23일 아침 일찍 게임기를 모두 차에 싣고 행방을 감췄다. 대전=전영한 기자
《서울 강남구에서 2년여간 ‘바다이야기’ 오락실을 운영하던 A 씨는 22일 업소를 폐쇄했다. 며칠 새 하루 평균 수입이 평소의 30% 수준으로 줄어든 데다 경품용 상품권을 유통할 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문을 닫지 않으면 상품권 중간 유통업체에서 새 상품권을 받아 가라는 압력까지 받게 돼 차라리 문을 닫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경품용 상품권 시장은 며칠 전에 이미 마비됐습니다. 웬만한 발행업체는 유통업체의 상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아요. 오락실 경품용 상품권 시장은 물론 일반 상품권 시장 전체에 큰 혼란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다이야기 파문’ 확산으로 경품용 상품권에 대한 상환 요구에 발행업체들이 대응하지 못하면서 상품권 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

이미 경품용 상품권은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있다. 또 일부 가맹점은 일반 문화상품권과 영화상품권까지 기피하면서 상품권 자체가 유가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수조 원대에 달하는 상품권 시장이 마비되면 소비 위축과 판매 부진으로 경기침체가 심해지는 등 부작용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상품권 대란(大亂)’ 이미 시작됐다

서울 강북 지역에서 바다이야기를 운영하는 B 씨는 경품용 상품권 1만 장을 상환해 달라고 발행업체에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B 씨는 “오락실 업계는 상품권 발행업체들이 이미 돈을 내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고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성남시에서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업주 10여 명은 상품권 환전이 며칠째 미뤄지자 22일과 23일 발행업체인 C사를 집단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상품권 중간 유통업체들도 오락실의 환전 요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통업체 대표 D 씨는 “이번 주 초부터 평소의 4배에 달하는 상품권을 환전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며 “발행업체가 부도 나면 유통업체도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게 돼 손도 내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상품권 유통 및 컨설팅 업체 웹유토피아 박노형 대표는 “상품권에 대한 현금 지급준비율이 50%가 안 되는 발행업체가 절반이 넘는다”며 “5, 6개 업체는 이미 시장에서 ‘부도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보증보험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경품용 상품권 업체의 현금 지급준비금은 2100억 원으로 전체 상품권 발권한도액의 21% 수준이다. 상환 요구가 빗발치면서 발행업체들이 지급준비금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지급준비율은 10%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상품권 유통전문 인터넷 사이트 티켓나라의 최차현 실장은 “이번 주 초부터 경품용 상품권 거래가 완전히 끊겼으며 가격도 폭락해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발행업체가 고의로 부도를 낼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민석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회장은 “일부 상품권 발행업체가 고의로 부도를 내고 수천억 원대의 판매 대금을 들고 외국으로 도주하는 경우를 가장 염려하고 있다”며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관계자에 대한 신원 확보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일반 상품권도 유가증권 기능 상실

경품용 상품권 시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경품용 상품권 업체가 발행하는 일반 상품권까지 가맹점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와 일반 상품권 가맹계약을 한 업주들은 23일 오후 비상 대책회의를 열고 상품권 발행업체에 ‘가맹 취소’를 통보하기로 했다.

한 상품권 가맹점 업주는 “현 시점에서 경품용 상품권 업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은 ‘부도 어음’이 될 수도 있다”며 “환금성에 대한 위험(리스크) 때문에 이미 상품권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맹계약이 취소되는 상품권은 사실상 유가증권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경품용 상품권은 물론 문화상품권 등 일반 상품권도 마찬가지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금보다 상품권이 더 쉽게 쓰이는 데서 알 수 있듯 상품권이 현금에 비해 50% 이상 거래를 촉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일반 상품권까지 기능을 상실하면 영화를 포함한 관련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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