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담은 북이 7월 ‘미사일 불꽃놀이’를 벌인 뒤 두 정상이 전화회담에서 논의한 내용의 재판(再版)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후 주석은 “관련 국가들이 냉정과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미일의 강경대응을 손잡고 견제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북의 핵실험이었다.
이번 회담에서도 중국의 대북(對北)정책 목표는 분명히 드러났다. 북의 핵 보유에는 반대하지만 체제 붕괴는 원치 않으며, 미일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의 강도를 낮추도록 중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은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북핵은 국가의 존망과 사활이 걸린 문제다. 중국과의 어떤 합의도 북의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행여 중국의 제재 반대가 우리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처럼 생각해선 곤란하다. 노 대통령은 후 주석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보다 강한 대북 압박 약속을 얻어냈어야 옳다.
그렇지 않아도 노 대통령은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대해 다분히 회의적인 것처럼 비친다. 11일 외교안보전문가들과의 만찬 간담회에서도 “회원국으로서 유엔 결의안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결의안이) 구체적인 사업 하나하나까지 간섭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제재의 강도를 낮추면서 포용정책의 기조는 유지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계속 추진 방침은 그 증거다. 이러니까 미국 측에서 “‘때리는 시늉’까지 말린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 아닌가.
금명간 채택될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논의 과정에서도 ‘한중 대(對) 미일’의 대립구도는 두드러지고 있다. 당초 미일이 주장했던 군사 제재 가능성은 배제됐고, 해상검문 대상도 축소됐다. 중국이 앞장서고 러시아가 거든 결과다. 우리는 내심 중-러 편이었다.
그러나 수위가 낮아졌다고 해도 일단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돼 실천에 옮겨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러도 동참할 수밖에 없다. 결의안 이행 여부를 감시할 ‘제재위원회’가 설치되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안과는 별도로 일본 호주 등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해상검문 조치를 강행할 방침이다. 일본도 14일 0시를 기해 독자적 제재조치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일의 ‘남방 축(軸)’ 대신 중-러의 ‘북방 축’에 선다고 해서 과연 북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맹목적 자주(自主)를 버리고 정말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실 위에서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상시적(常時的)인 북의 핵 위협 앞에 놓이게 된 이 참담한 상황에서도 얼치기 자주·친북 코드를 버리지 못한다면 국민만 암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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