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주재 북한대사의 말대로 핵실험을 안보리가 축하해 줘야 할 일이라면 그 경사의 주인공은 끈질긴 집념과 부단한 노력으로 핵실험에 성공한 김정일 위원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김대중,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들의 물심양면 헌신적 도움이 없었다면 북한이 그런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햇볕정책 이름으로 거금을 지원한 DJ와 ‘북핵이 그들의 자위 수단’이라며 재정적 정신적으로 후원하고 미국의 반핵 노력에 발목을 잡아 시간을 벌게 해 준 노 대통령의 공은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정말 이것이 민족의 경사라면 세 사람의 이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요, 이것이 한반도의 재앙이라면 이들의 죄과 역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라 운명 北 자비심에 맡긴 꼴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국가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삼천리금수강산에 최초로 핵폭탄이 터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의 얼굴에는 부시의 단호한 표정이나 아베의 비장한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간혹 엷은 미소까지 머금고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포용정책에 효용성이 더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게 된 것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남의 나라 얘기하듯 말을 해 많은 시청자는 그가 국가원수인지, 텔레비전의 뉴스 해설가인지 의아해했다.
김정일의 ‘주체’에 ‘자주’로 이중창을 엮어 주며 민족공조를 이루느라 미국에 등 돌렸던 노 대통령은 이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야 하는 겸연쩍은 상황을 맞았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북한이 핵폭탄을 터뜨렸고, 포용정책의 실패가 확인됐는데도 그가 남북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단호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포용정책 포기를 시사했다가 DJ와 전화통화를 한 후 다시 이 정책을 옹호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듯하다. DJ가 훈수를 두고 노 대통령이 이를 따르는 모습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경구절을 연상케 한다.
핵무기가 주는 정치적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일반 국민은 잘 모를 수 있다. 북한이 핵무장했다는 것은 우리가 나라의 운명을 북한 정권의 자비심에 맡겨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 집단이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이 사회의 좌익세력뿐이다. 그들 중 일부는 요즘 열심히 텔레비전에 등장해 ‘미국의 압살정책이 북핵을 불렀으며 위기관리 차원에서 북을 자극하지 말고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교활한 언변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주장은 두 전 현직 대통령의 논리와 유사하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남한 국민은 좌파가 집권한 지난 8년간 이미 과거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 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이번 사태를 통해 똑바로 알았다. 이 상황에서 두 전 현직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는 길은 김정일 독재집단이 핵실험 후폭풍으로 자멸해 북한에 민주정권이 들어서든지, 아니면 두 사람이 절대다수 국민의 충언에 귀를 기울여 생각을 좌에서 우로 바꾸든지 둘 중 하나인데 모두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南 정치실험이 부른 北 핵실험
그래서 결과적으로 두 사람이 역사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면 이는 그들을 지도자로 선택한 ‘국민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정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지난 8년간 두 차례에 걸쳐 좌파 정권을 선택한 남쪽의 ‘정치실험’이 북쪽의 ‘핵실험’을 불러왔다는 얘기가 된다. 이 쓰디쓴 경험은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정치적 선택을 얼마나 신중하고 현명하게 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깨달았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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