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팀 수장(首長)인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9일 기자들에게 “최근에 미국과 영국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도 18일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터라 요즘은 책도 보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핵실험 강행이 오히려 핵심 경제부처에는 자기 충전을 위한 ‘방학’이 된 셈이다.
북핵 사태로 인한 경제 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사태를 관망하자는 의견이 대세다. 일부 재경부 중간 간부들은 “거시 정책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관망론에 묻혔다. 핵실험 당일인 9일 한명숙 국무총리 주재로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를 가진 것 외에는 핵실험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루는 회의도 거의 열리지 않았다.
이런 느긋한 움직임은 북핵 사태의 여파를 가늠하느라 분주한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소와 대조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북핵 사태 등을 감안해 내년 경제성장률이 4.3%에 그칠 것이라며 정부의 탄력적 대응을 주문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이경태 원장은 “정부가 미국 당국자들과 함께 외국인 투자가를 대상으로 한국경제 설명회를 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정부의 경제 관련 위기관리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심지어 주요 경제장관들이 ‘안보 불감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권 부총리는 “북핵 사태와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춘 대응 방안이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 실체의 일단조차 공개된 적이 없다. 19일에는 이른바 ‘경기 관리론’을 제시했지만 ‘선언적 발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북핵 사태를 놓고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경제장관들이 독서를 통해 ‘내공’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북핵 파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경제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독서를 운운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모든 변수가 정리되면 움직이겠다’는 관료적 사고방식이 통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너무나 엄중해 보인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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