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옷을 입은 디자이너 앙드레 김(71)이 무대에 올랐다. 그의 뒤로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앙코르와트 사원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신비롭게 빛났다.
11일과 12일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의 앙코르와트 사원 동문에서 앙드레 김 패션쇼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 행사는 지난달 21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앙코르와트 유적지 일대에서 열리는 ‘앙코르-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2006’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패션쇼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9시(현지 시간). 무대가 일순간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하얀색 투피스에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한 의상을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패션쇼의 1부 무대인 ‘21세기를 향한 앙코르 경주 세계문화 축제’의 시작이다. 노란 장미 무늬가 그려진 검은색 드레스 등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의 의상이 대거 선보였다.
‘열정, 꿈과 로맨티시즘’의 2부에 이어 ‘크메르 왕국의 전설’을 주제로 한 3부에서는 캄보디아 크메르 문명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표현한 의상들이 등장했다.
오렌지색 의상에 금색의 불상 무늬와 앙코르와트 사원 벽화를 프린트한 시폰 드레스가 선보이자 500여 명의 관객은 큰 박수를 보냈다. 4부 ‘신라왕국의 환상곡’에선 신라의 문화재를 새긴 드레스가 돋보였다.
패션쇼의 하이라이트는 5부 무대에 등장한 7겹 옷. 모델이 파랑색, 갈색, 녹색, 주홍색 등 7벌의 옷을 껴입고 한국 민속음악에 맞춰 한 벌씩 춤을 추듯 옷을 벗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앙드레 김은 “각각의 옷은 한국 역대 왕실의 장엄한 기품과 신비, 한국 여인의 속 깊은 한과 애틋한 그리움 등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패션쇼에는 모두 187벌의 의상이 선보였다. 한류 스타 김희선과 김래원이 메인 모델로 출연했고 신인 탤런트 정동진 장지우 최성준 허정민 이기우 등도 무대에 올랐다.
앙드레 김은 “1200년 전 크메르 왕국의 찬란한 예술과 1000년에 걸친 신라 문화를 세계의 미로 재창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 유적지에서 한국 예술의 멋과 아름다움을 선보여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수스야라 엑스포조직위원회 캄보디아 측 부단장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앙드레 김의 앙코르와트 패션쇼가 성사돼 기쁘다”면서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양국의 우정과 신뢰가 더욱 쌓이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올해는 앙드레 김이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해외 패션쇼를 개최한 지 40주년 되는 해. 1996년엔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그는 “동양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한국인, 그리고 아시아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앙코르와트(캄보디아)=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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